한국 현대 건축의 대표, ‘공간’ 사옥
건축가 故 김수근의 작품
현재 현대 미술관으로 탈바꿈
몇 년 전 큰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기억하시나요? 당시 주인공이었던 배우 장동건이 일하는 사무실은 독특한 분위기로 눈길을 끌었는데요. 사무실의 배경이 되었던 곳은 바로 ‘공간’ 사옥입니다. 문화재로도 지정되었다는 그곳은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꼭 한번 가봐야 하는 장소로 여겨지며 건축 전문가들에게 극찬을 받은 곳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공간’사옥은 어떤 곳일까요? ‘공간’ 사옥의 건축 요소와 건축가, 현황에 대해 알아봅시다.
◎한국 현대 건축의 자랑, ‘공간’ 사옥
북촌에서 창덕궁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담쟁이덩굴로 덮인 4층짜리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그곳은 이전 ‘공간’ 건축사무소 사옥이었으며 현재는 현대미술관 ‘아라리오 뮤지엄’입니다. ‘공간’ 사옥은 건물 입구를 측면에 만들어 진입로를 골목 이미지로 나타냈으며, 외관은 검은 벽돌로 폐쇄적인 모습이지만 내부는 한옥의 막힘없는 공간 연결 방식을 도입해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을 현대건축으로 표현한 한국 현대 건축의 백미라는 찬사를 받은 건물이죠.
건축가 김수근이 지은 공간의 옛 사옥은 1998년 건축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대한민국 50년 사상 최고의 건축’설문 조사에 1위로 뽑힌 곳입니다. 담쟁이넝쿨로 유명한 이곳은 건축가 김수근이 1971년에 지하 2층, 지상 5층의 벽돌 건물을 짓고 1977년에 바로 옆에 같은 재료로 증축했습니다. 벽돌 건물 내부는 생각보다 천장이 낮으며, 계단은 좁습니다. 그가 늘 강조했던 인간의 몸의 크기를 기준 척도로 하여 공간을 설계하는 ‘휴먼스케일’을 기반으로 설계를 했기 때문이죠. 그는 한국인의 체형을 고려한 ‘휴먼 스케일’을 적용해 좁고 넓음, 높음과 낮음, 막힘과 열림으로 다양한 공간을 연출하려고 했습니다.
벽돌 건물의 또 다른 특징은 ‘스킵 플로어’입니다. 이는 ‘공간’사옥의 빼놓을 수 없는 건축 특징인데요. ‘스킵 플로어’는 바닥을 반 층씩 어긋난 높이로 설계하는 방식으로 공간에 재미를 불어넣으며, 공간을 다양하게 나누어 한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죠.
‘공간’은 구사옥인 벽돌 건물과 그 맞은편 통유리로 된 신사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초기 건축사무소로 사용된 이곳은 전 직원을 수용하기에는 건물이 비좁아지자 공간 그룹의 2대 대표인 장세양이 1997년 유리 건물을 지었습니다. 신사옥은 구사옥이 지어진 지 20년 만에 세워졌지만 건축가 장세양은 스승 김수근의 건축혼을 투영하면서 그가 늘 바라보던 창덕궁을 가리지 않기 위해 유리라는 재료를 선택해 건물을 지었다고 합니다. 두 건물은 유리로 만들어진 구름다리로 이어져있으며 현재 구사옥은 미술관으로, 신사옥은 식당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문화의 ‘공간’
건축사무소로 쓰였던 ‘공간’은 문화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예술종합 월간지 ‘공간’의 사무실, ‘공간 미술관’, 소극장, 카페, 공예품 전시관 등이 입주해있어 문화운동의 발원지이자 문화인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는데요. 그중 소극장은 공옥진 여사의 ‘병신춤’,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처음 시작한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예술종합 월간지 <공간>의 사무실로 사용됐던 이곳은 당대 최고의 문화예술잡지를 발간했는데요. 김수근 건축가가 1967년 창간한 월간지 <공간>은 국내 최장수 예술, 건축 종합잡지로 문화계와 건축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잡지 <공간>을 보지 않으면 지식인이 아니라는 말이 있었을 만큼, 1970~80년대에 <공간>은 당대 최고로 영향력이 큰 잡지였습니다. <공간>의 창간호부터 글을 쓴 건축가 김원은 “김수근 선생이 나한테 와서 ‘우리 예술가들이 뛰어놀 운동장이 될 잡지를 만들자’라고 했다. 그 말대로 우리는 원 없이 글을 썼다”라며 당시 예술가들에게 대표되는 잡지임을 드러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故 김수근
‘공간’ 사옥을 지은 건축가 김수근은 한국 건축의 큰 맥을 이룬 건축가이자 예술가, 지식인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우리의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올림픽 체조경기장, 경동교회, 한계령 휴게소, 청주 박물관 등이 김수근의 대표적인 건축물입니다.
그가 지은 대부분의 건축물의 공통점은 벽돌을 사용한 것인데요. 벽돌을 여러 방면으로 활용하여 건축물을 지었습니다. 벽돌을 불규칙적으로 쌓는가 하면 인위적으로 벽돌을 깨트려 깨진 면을 바깥쪽으로 돌출시켜 무수히 다른 인상을 가진 울퉁불퉁한 벽면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건축뿐만 아니라 월간지를 창간하거나 ‘공간’ 사옥에 소극장을 들이는 등 예술가, 지식인으로서도 활발히 활동을 했습니다.
◎현대미술관으로 재탄생, 아라리오 뮤지엄
문화운동의 발원지로 자리매김한 ‘공간’은 공간사의 부도로 2013년 경매에 나왔습니다. 경매에 나왔을 당시 ‘공간 사옥은 부동산이 아닙니다. 문화입니다.’라며 건축 및 문화예술계의 원로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건물이 민간기업이나 개인에게 매각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그 결과 구사옥인 벽돌 사옥은 건축, 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문화재로 등록되었지만 이미 세계적인 미술품의 컬렉터이자 사업가인 아라리오 그룹 김창일 회장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는 ‘공간’ 사옥을 150억 원에 사들여, 자신이 35년 동안 수집한 현대미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이름을 바꾼 미술관은 건물 원형 그대로 현재에도 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전 ‘공간’ 사옥인 아라리오 뮤지엄에서는 현재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방문한 사람들은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에 대해 토론하기도 하며, 관련 음악, 디자인, 서체 등을 함께 체험하기도 하는데요. 미술관은 소극장, 월간지 사무실 등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공간’ 사옥의 역사적 가치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죠. 앞으로는 ‘공간’ 사옥이 어떤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발전할지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