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출신 예비역 대위가 철밥통 버리고 ‘보험설계사’ 된 계기
경쟁률이 예전만 못하다고는 하나 여전히 40 대 1에 달하는 치열한 합격문을 뚫고 대위까지 진급했음에도 박푸름은 제대 후 보험설계사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경쟁률이 예전만 못하다고는 하나 여전히 40 대 1에 달하는 치열한 합격문을 뚫고 대위까지 진급했음에도 박푸름은 제대 후 보험설계사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최근에는 생도들의 품위 유지 등을 명목으로 유지돼왔던 일부 조항들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속속들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학생의 신분임과 동시에 엄연한 군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기꺼이 자유를 제약받기를 택한 사관생도들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