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검절약해서 모은 700만 원
집 갈 시간도 아까워 가게에서 잠을 자
가수를 그만두며 20대에 미국으로 떠나…
단돈 700만 원으로 20대에 4채의 집을 살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겁니다. 사실상 700만 원이면 서울 원룸 월세 보증금도 충족되지 않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포기합니다. 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려 성공한 한국 가수가 있죠.
물론 연예인들이 준 재벌이라고 불릴 만큼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실제로 탑 급 연예인들이 적으면 수십억, 많으면 수백억 원대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몇백억짜리 빌딩을 샀다더라 하는 소식은 이제 놀랍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가수가 그렇게 돈을 벌지는 않죠. 게다가 주인공은 가수 생활을 금방 접고 해외로 떠났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글로벌 부동산 재벌이 되어 돌아왔죠. “정말 근검절약해서 700만 원을 모았다. 많은 연예인들이 명품을 사는데, 나는 일절 돈을 쓰지 않았다”라는 전설의 한국 가수, 방미를 함께 알아보시죠.
◎전설의 한국 가수 방미
80년대 ‘날 보러 와요’,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히트곡을 냈던 방비는 1960년 생으로 본명은 박미애입니다. 그는 본래 가수가 아닌 코미디언으로 데뷔죠. 1978년 MBC 코미디언 공채 2기에 합격해 18살의 나이로 코미디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곧 가수로 전향했죠.
히트곡을 여럿 내며 젊은 나이에 성공했던 방미는 1990년대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단, 가수로서 미국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사업을 하기 위해서였죠.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83년 LA 공연차 미국을 방문한 후 해외 진출과 비즈니스를 꿈꿨다고 밝혔습니다.
그렇게 1982년 그는 방배동에 있는 32평 궁전 아파트를 2500만 원에 매입하며 본격적인 부동산 투자에 나섭니다. 이후 30번 이상 이사를 다니며 강남 일대와 용산 그리고 제주도까지 섭렵했죠. 그가 투자했던 시기가 아파트 붐이 일어난 1980년대였다는 것도 성공에 한몫했습니다. 마침내 한남동의 고급 주거지역 유엔빌리지에 입성할 때 그의 자산은 200억 원에 달하게 되었죠. 하지만 2007년, 그는 돌연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나온 저렴한 맨해튼 부동산이 효자 역할을 했습니다. 맨해튼 부동산은 6개월 만에 이전 시세의 90%를 회복했고, 1년 뒤에는 그 이상 상승했죠. 이후 그는 지속적으로 해외 투자처를 찾아 재산을 불렸습니다. 한국 부동산 규제가 강해지는 와중에도 해외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죠.
글로벌 부동산 재벌이 된 방미는 이제 자신만의 삶을 살고자 합니다. “고생 많이 했다. 내가 남편이 있나 자식이 있나. 혼자서 꿋꿋하게 도전해 살아남았고 여기까지 온 거다. 이제부터 행복하게, 나한테 투자하며 살려 한다”라는 뜻을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