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삼형제 ‘왕자의 난’
장남 이맹희, 밀수 사건으로 제외
부친 탄원서 보낸 차남 이창희
이건희, 언론 경영에 소질

최근 주요 대기업에서 경영 승계 움직임이 활발하다. CJ그룹, 현대그룹 등 오너 3세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준비가 한창인데, 시기와 맞물려 우리나라 대표 그룹 삼성에서 후계자 자리를 놓고 일어난 ‘왕자의 난’ 사건이 재조명됐다.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는 1976년 세 아들을 불러 가족회의를 열었다. 암 수술받으러 일본으로 떠나기 전, 회사의 미래 우두머리를 결정할 자리였다. 그는 이때 장남 이맹희, 차남 이창희를 건너뛰고 막내아들인 이건희를 후계자로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남이 아닌 셋째가 후계자가 된 이유는 조금 더 과거에 벌어진 일에서 찾을 수 있었다.

1966년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철 회장의 공모 아래 일본 미쓰이그룹에서 사카린 약 55톤을 밀수했다가 적발된다.

이 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은 한국비료공업과 대구대학을 정부에 헌납하고 경영선에서 물러났다.

이 밀수는 장남 이맹희가 진두지휘했지만, 처벌은 차남 이창희가 받았다. 책임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간 이창희는 1년 만에 풀려난다. 이병철 회장이 사라진 뒤엔 이맹희가 삼성그룹을 2년간 이끌었는데, 이때 아버지에게 밉보이며 후계 구도에서 밀려났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갈 것을, 이 과정에서 출소한 이창희는 후계자 자리를 확실히 가지기 위해 정권 인사와 손잡았다. 1969년 그는 부정한 일을 저지른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다시 경영에 손을 대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이 회장의 복귀를 반대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오히려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는 행위는 패륜이라며 이창희의 탄원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병철 회장은 크게 분노해 이창희 씨에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귀국하지 말라’며 미국으로 보내버렸다.

이건희 회장은 이러한 형들의 반란에 어부지리로 후계자가 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명 ‘왕자의 난’이 일어나기 전까지 나름 스스로 능력을 보여준 덕도 있다.

연세대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의 명문대인 와세다대학으로 유학길에 오른 이건희는 한국으로 돌아와 중앙일보·TBC(동양방송)를 맡으며 경영 감각을 키웠다. 당시 이 회장은 드라마에 대한 통찰력을 드러내며 배우의 급여 지급과 대우에 각별히 신경 썼다고 한다. 그 덕에 TBC 작품의 인지도와 시청률이 타 방송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한편, ‘왕자의 난’으로 이병철 회장의 눈 밖에 난 이창희는 삼성을 떠나 홀로서기를 시도하며 비디오테이프 사업으로 이름을 알리던 새한미디어를 데리고 나갔다. 하지만 1991년, 야심을 전부 실현하지 못하고 58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아들인 이재관 부회장이 1997년 새한그룹으로 출범시켰다.

그러나 그 뒤 과도한 사업확장에 IMF 금융위기까지 덮쳐 새한그룹은 속절없이 쓰려졌다. 결국 2000년에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계열사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새한그룹은 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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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체 댓글

  1. 그시대에 박정희와 공모라고 하면 안돠지 지금도 대통과 고오라면 개도 웃는데 분명한 박정희 지시지 사카린 밀수는 정치자금도 지돈처럼 뜯고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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