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군·정보기관과 밀접한 관계
美 관세 때리기에 中도 관세로 대응
희토류·미국채 등 미국 약점도
경제적 손해 감수하고 국가 위신 택해
미중 무역전쟁이 갈수록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최대 25%의 관세를 적용하고, 중국의 통신 장비 업체인 화웨이를 거래 제한 명단에 올렸죠. 미중 간 다툼은 무역적자에 대한 경제적 대응을 넘어 이제 국가 안보와 패권 다툼의 영역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는데요.
중국은 자국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음에도 굽히기는커녕 더 강경한 태도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과 함께 중국이 경제적 타격을 감수하면서까지 물러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화웨이, 군·정보기관과 밀접한 관계 드러나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 극심한 갈등을 겪고 12월 말 정상회담에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지만, 근본적인 견해차를 끝내 좁히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잠잠했던 관세 공방도 올 5월을 기점으로 다시 부활했죠. 설상가상으로 영국에 수출된 화웨이 가정용 공유기에 백도어(시스템 설계자, 관리자에 의해 고의로 방치된 보안상 허점)가 심어져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중국 제품, 특히 화웨이 장비들에 대한 불신이 극으로 치달았습니다.
5월 16일, 미 상무부는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렸고, 이에 따라 미국의 기업들은 정부 승인 하에서만 화웨이와 거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화웨이에 소프트웨어와 반도체 등을 공급하던 구글, 인텔, 퀄컴 등은 일제히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죠. 스마트폰이 주력 상품인 화웨이는 구글의 안드로이드도, 퀄컴과 인텔의 프로그램 구동 반도체 통신칩도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화웨이가 중국 정부, 인민 해방군 그리고 중국의 정보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혹은 최근 그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렸는데요. 베트남 풀브라이트 대 크리스토퍼 볼딩 교수와 영국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 연구원들의 조사 결과, 화웨이 임직원 중 다수가 화웨이와 중국 인민 해방군 산하기관에 복수로 고용된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직접적인 스파이 행위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미중 정부 간 블랙리스트 공방을 더욱 심화시킬 전망입니다.
◎ 물러서지 않는 중국, 심화되는 갈등
작년부터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웨이의 런정페이 회장은 자신만만한 태도를 고수해왔습니다. 올 초 중국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화웨이의 5G 통신장비, 마이크로파 등 첨단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친 그는 “오늘날 직면한 문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예견해고 대비해왔다”고 덧붙였죠.
중국 정부도 자존심을 꺾지 않고 강경한 대응을 이어나가는 중입니다. 미국이 5월 10일 2천억 달러 상당의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10%에서 25%로 인상하자, 중국도 6월부터 6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제품에 대해 5~25%의 관세를 적용하기 시작했죠.
지난 6월 일본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호전되는 듯싶기도 했습니다. 양국은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은 중국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를 무기한 보류하기로 결정했죠. 하지만 각국 언론들은 이번 회담 결과가 기존의 합의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는데요. 핵심 쟁점에 있어 협상 데드라인도 제시되지 않았고, 중국이 국영기업 보조금 문제 등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한 실질적인 돌파구를 찾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 ‘자신만만’ 중국의 속내는
중국이 독점하다시피 하는 희토류의 공급, 연간 2000억 달러 수준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중국 내 미국 기업들, 중국이 보유 중인 미국채 등 미국 역시 중국과의 싸움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역전쟁으로 인한 타격은 2010년을 기점으로 성장률 둔화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이 더 크게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루죠. 본국에 비해 저렴한 생산 비용 때문에 중국에 생산 기지를 마련한 글로벌 기업들의 이탈과 투자 계획 변경 등이 안 그래도 저조한 중국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짙기 때문입니다.
경제력을 포함한 국력에 있어서도 중국은 아직 미국의 수준에 다다르지 못했죠. 때문에 상대적 약자인 중국이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며 미국의 비위를 맞추는 수밖에는 없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한치의 물러섬 없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이와 관련해 국제관계 전문가인 우수근 산둥대 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열위를 간파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끝도 없이 이어지자, 시 주석은 어차피 일정 부분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면 국가의 위신과 자존심을 지키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는 요지의 의견을 밝힌 바 있습니다.
중국 내 시 주석의 위상 문제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안을 통합하고 강력한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바깥의 적과 더 거칠게 싸우는 건 역사 속 많은 지도자들이 선택해온 방식이죠. 주석의 10년 임기제를 폐지하고 국가 정보법 제정 절차에 돌입하는 등 장악력을 높이려 애쓰고 있는 시진핑 주석이 불만의 목소리를 무마하고 강력한 지도자로서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미국을 상대로 강수를 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경제 대국 1,2위의 싸움인 만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한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중 무역전쟁이 제2의 대공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는데요. 대미·대중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앞날은 더욱 불투명합니다. 영국의 경제분석기관 픽셋에셋 매니지먼트의 분석 결과, 한국은 미중 무역전쟁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국가 6위에 이름을 올렸죠. 최근 일본과의 정치적·경제적 갈등마저 심화된 상황에서, 한국이 거미줄처럼 얽힌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이목이 집중되는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