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미국의 하버드와 예일, 일본의 게이오와 와세다 그리고 한국의 연세대와 고려대까지, 세계 각국에는 전통적으로 라이벌 관계인 학교들이 있습니다. 입시경쟁이 치열한 한국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학교 서열을 적어놓고 내가 맞다, 네가 맞다 설전을 벌이는 일도 자주 일어나죠. 이렇게 학교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지만, 최근에는 학교 내에서 계열별로 나뉘어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는데요. 오늘은 성균관 대학교에서 자연계열과 인문계열 사이에 발생한 갈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연고전 혹은 고연전
앞서 언급했듯이 연세대와 고려대는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명문대이자, 숙명의 라이벌입니다. 매년 9월에 열리는 두 학교 간 스포츠 경기는 국가 대항전을 방불케 할 만큼 그 열기가 뜨겁죠. 두 학교 간 경기들을 통칭 ‘연고전’이라고 부를지, ‘고연전’이라고 부를지만 가지고도 밤새 싸울 수 있을 정도라고 하네요.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이 외계어 같기도 하고 암호 같기도 한 말, 대한민국 대학생이라면 다들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는 성적에 따른 대학 서열을 이름의 앞 글자만 따서 나열한 리스트인데요. 계열이나 과 별로 입결이 다르기도 하고 어느 해는 이 학교가, 다른 해에는 저 학교가 앞서기도 해 논쟁의 여지가 많죠. 사회에 나오면 출신 대학이 크게 의미 없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하지만, 적어도 재학 중에는 대학 간 서열 다툼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 대결’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성균관대 자연 캠 VS 인문 캠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에서 ‘성’을 담당하고 있는 성균관 대학교의 캠퍼스는 둘로 나눠져 있습니다. 인문사회과학대학 캠퍼스는 서울시 종로구에, 자연과학대학 캠퍼스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자리하고 있죠.
캠퍼스가 떨어져 있어서인지, 성대 인문계열과 자연계열은 마치 서로 다른 학교인 것처럼 경쟁하기도 합니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한, 두 캠퍼스 간 체전인 자인전은 연고전(고연전) 못지않게 치열하죠. 물론 인문대 학생들은 이 체전을 ‘인자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문과들이 그렇게 잘 논다며?
자인전을 앞두고 인문계열 학생들을 ‘센스 있게’ 도발하고 싶었던 자연계열 학생들은 캠퍼스 내에 현수막을 내 겁니다. 문제는 그 내용이었는데요. 현수막에는 ‘문과들이 그렇게 잘 논다며? 졸업하고 ㅎㅎ’, ‘인문 캠은 학교에서 치킨집 사업 배운다던데?’, ‘들어올 땐 1등급, 나갈 땐 9급’ 등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심하다 싶은 문구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성균관대 측이 웹사이트에서 밝힌 자인전의 목적은 ‘양 캠퍼스 학생 등 구성원 간 화합과 교류 증진’입니다. 하지만 경쟁을 하다 보면 본래의 의미를 잊고 선을 넘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데요. 특히 취업은 생계가 달린 절박한 문제입니다. 인문계열 졸업자들의 취업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이 같은 현수막은 정말 마음의 상처가 될 수도 있죠.
총학생회 사과까지
현수막의 존재를 알게 된 인문사회과학 캠퍼스 학생들은 당연히 반발했고, 비판이 거세지자 양 캠퍼스 총학생회는 각각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합니다. 문제가 된 현수막도 모두 수거했죠.
총학생회는 사과문에서 “자인전 현수막 문구 모집과 관련해 주의 깊게 판단하지 못해 학우 여러분께 논란과 우려를 남겨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또한 “선의의 경쟁을 위한 센스 있는 도발을 주제로 문구를 모집해 댓글 ‘좋아요’ 수에 따라 총 20개의 댓글을 선발했고, 이를 자연과학캠퍼스 내에 게시했다”며 해당 문구들이 캠퍼스에 내걸리게 된 경과를 밝히기도 했죠.
현수막에 쓰인 폰트나 문장의 스타일을 보면 ‘배달의 민족 신춘문예’를 벤치마킹하려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웃기기 위해서 타인의 상처를 건드리지만 않았다면, 또 단순히 ‘좋아요’ 수로만 댓글을 선발하지 않았다면 즐거운 축제를 위한 신선한 기획이 될 수도 있었겠죠. ‘센스 있는 도발’과 ‘도를 지나친 공격’은 어쩌면 한 끗 차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