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임현주 아나운서가 뉴스에 안경을 쓰고 등장하면서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고작 안경 하나일 뿐인데 여자 아나운서가 안경 하나 썼다고 왜 이 난리일까 싶은데요. JTBC 등에서는 이미 2013년부터 안경 쓴 아나운서가 등장하고 최근 강지영 아나운서가 뿔테 안경으로 화제가 되었던 걸 생각하면 굳이 이렇게 논란이 될 소재인가 싶습니다.

임현주 아나운서가 화제가 된 이유는 안경 쓴 최초의 ‘지상파’ 아나운서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MBC 아나운서이자 현재는 프리랜서인 오상진은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질문있습니다’에서 아나운서들에게는 여러 불문율이 있다고 밝혔었죠. 이쯤에서 어떤 불문율이 더 있고 요즘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해지는데요. 조금 더 알아보았습니다.

0. 삶의 불문율


우선 불문율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죠? 불문율은 ‘문서의 형식을 갖추지 않은 법’입니다. 상세한 문서 등으로 명시되어있지는 않지만 구성원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지키는 규율이죠. 누가 지켜야 한다고 굳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어길 경우 눈총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어? 저거 해도 되는 거였어? 나도 할래”처럼 왜 안 되는지는 모르지만 지금껏 그래왔으니 그저 지키는 경우도 있죠. ‘남의 집에 냉장고는 허락 없이 열지 않는다’와 ‘남자화장실 소변기는 한 칸을 띄우고 쓴다’ 같은 것도 한 예입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아나운서의 불문율을 알아볼까요?

1. 남자와 여자의 안경


2013년 JTBC의 주말 뉴스의 안착히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등장했습니다. 그 모습에 한 트위터 이용자는 “JTBC에서 안경 쓴 여성이 뉴스를 진행하더라. 이것도 작은 변화라고 본다.”라고 전했는데요. 잠시지만 KBS의 유애리 아나운서도 안경을 쓰고 2017년에 뉴스 앵커를 맡았죠. 하지만 여전히 뉴스를 보면 남자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있는 경우는 흔한 반면, 여자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여자 아나운서는 안경을 써서는 안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던 걸까요?

임현주 아나운서 전, 뿔테 안경 착용으로 2016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던 JTBC의 강지영 아나운서는 “선배가 뉴스를 발제할 때 안경을 쓰는데, 저도 안경을 쓰고 발제를 하면 부각되지 않을까”라고 안경을 쓴 이유를 밝혔습니다. 시청자의 반응은 긍정적인 것 같다던 그는, 촬영 현장의 반응을 “선배를 따라 했다 말씀을 드렸더니 ‘아 그랬던가, 난 새로운 시도를 한 줄 알았어’ 다들 좀 신기해했다”라고 밝혔습니다.

현직 아나운서들은 안경을 쓰지 않는 것에 대해 “모두가 안경을 쓰지 않길래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발제에 따라 안경을 쓰고 안 쓰고를 결정하겠다”라는 강지영 아나운서처럼, 전달하고자 하는 발제에 따라 안경의 착용 여부를 결정하는 인식이 앞으로 주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곧 사라질 불문율이 되겠네요.

2. 중년 남자 젊은 여자


오상진은 “40~50대 남성 앵커와 20대 여성 앵커가 짝이 되는 것은 불문율인 것 같다”라고 차이나는 클래스에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중년 여성 앵커는 어떨까요? “중년 여성 앵커들도 물론 존재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보통 단독으로 뉴스를 진행한다. 옆에 젊은 남성 앵커가 함께하는 개념은 없다”라고 못 박았습니다. 실제로 중년 남자와 젊은 여자 앵커 조합은 매일 보이는 반면, 중년 여자와 젊은 남자 앵커 조합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조합입니다.

실제로 ‘오마이뉴스’의 2018년 12월 보도에 따르면 주말 KBS <뉴스 9>는 김태욱 기자(45세)와 박소현 아나운서(26세)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케이블인 JTBC도 이 불문율은 다르지 않는데요. 손석희 앵커와 안나경 앵커의 나이 차이는 33년으로 오히려 10~20년 사이의 나이차를 보이는 지상파보다 더 차이가 컸습니다.

반면, 불문율을 깨기 위해 노력한 방송사도 있습니다. YTN은 2018년 12월 뉴스 프로그램을 전면 개편하면서 이 불문율을 깨는데 앞장섰습니다. “YTN 다섯 개의 메인 뉴스 가운데 남성 앵커의 나이가 많은 뉴스가 두 개, 여성 앵커의 나이가 많은 뉴스가 두 개, 하나는 나이가 거의 같지만 언론 경력에서 여성 앵커가 앞선다”라고 YTN은 밝혔습니다.

외국의 경우 여자 아나운서는 35세 정도부터 가장 안정적이고 자연스럽게 방송을 진행할 수 있어 신뢰받는다고 하죠. CBS에서 저녁 시간 메인 진행자를 맡고 있는 여성 아나운서, 1957년생 케이티 쿠릭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나라의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대우도 YTN을 시작으로 바뀌어 가길 기대해봅니다.

3. 남중 여경


중년의 남자와 젊은 여자가 뉴스 아나운서 파트너로 굳혀진 이유는 그들의 역할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중년의 남성 아나운서는 어렵거나 진중해야 하는 뉴스를, 젊은 여성 아나운서는 비교적 가벼운 소재의 뉴스를 전해온 것이죠. 이는 발제하는 아나운서의 외모와 목소리가 주는 느낌과 전달력을 각각의 분야에 맞게 적용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YTN의 노종면 앵커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런 발제 소재 분담에 관한 불문율에 대해 “남성 앵커가 메인이어야 하고 경험이 많고 연륜이 있는 캐릭터를 오랜 관행처럼 해왔고 젊은 여성 앵커를 선호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라며 업계의 상황을 전한 후, “결과적으로 나이가 많고 적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힌 바 있습니다. 누가 전달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잘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죠.

전직 아나운서 오상진이 귀띔해준 우리나라 아나운서들 그리고 뉴스의 불문율을 살펴보았습니다. MBC의 임현주 아나운서는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며 ‘왜 안경 썼냐고 묻는 사람이 참 많았다’라고 전했는데요. 이런 현상에 대해 김수정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오히려 방송 현장의 불문율이 현실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이처럼 전체 사회의 인식이 변했음에도, 특정 집단의 인식 변화가 느려 시대에 뒤쳐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집단의 불문율은 집단 모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이죠. 심지어 그로 인해 불편을 겪은 여자 아나운서도 그 불문율을 지키는데 함께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뉴스 본연의 취지인 ‘소식을 잘 전달한다’를 위해 안경을 쓴 JTBC의 강수정 아나운서, 그리고 뉴스 체제를 바꾼 YTN를 시작으로 이런 불필요한 불문율은 곧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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