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외투가 필요하지만, 점심에는 따듯하다 못해 살짝 덥다는 생각이 드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온이 연일 40도 가까이 치솟았던 지난여름을 떠올리자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래도 맛있는 여름철 음식들을 떠올리면 조금 위로가 되죠. 짭짤한 국물에 면을 살짝 담가 먹는 메밀국수나 좋아하는 과일을 듬뿍 넣은 화채도 좋지만, 곱게 간 얼음을 토핑과 함께 떠먹는 빙수만큼 여름에 잘 어울리는 음식도 없을 겁니다. 최근에는 빙수의 종류가 다양해져 취향 따라 골라 먹는 재미도 있습니다. 치즈나 인절미처럼 색다른 재료를 얹은 눈꽃빙수를 출시하는 ‘설빙’은 여름이 되면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사랑받는 빙수 브랜드가 되었는데요. 설빙이 해외 짝퉁으로 고생한 것도 모자라, 중국 업체에 10억에 가까운 돈을 물어주게 생겼다고 합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300개에 달하는 중국 내 짝퉁 설빙


2013년 첫 선을 보인 빙수 전문 프랜차이즈 ‘설빙’은 떡 카페에서 출발한 브랜드입니다. 설빙의 정선희 대표는 외식산업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서 유학했죠. 전통음식을 활용한 일본의 고급 디저트 가게들을 보고 그야말로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한국에 돌아와 ‘시루’라는 이름의 떡 카페를 냈지만, 그다지 큰 반응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당뇨병을 앓고 있던 아버지를 위해 건강한 재료로 만들었던 ‘인절미 빙수’가 가게에서 의외의 히트를 치자, 이름을 ‘설빙’으로 바꾸고 본격적인 빙수 판매를 시작하는데요. 1년 6개월 만에 약 420여 개의 가맹점을 오픈한 설빙은 2017년 117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죠.

국내에서 성공을 거둔 설빙은 해외로 눈을 돌립니다. 2015년 5월에는 중국 상해에, 11월에는 태국 방콕에 지점을 오픈했죠. 하지만 중국과 태국에는 이미 설빙과 유사한 빙수 브랜드들이 성업 중이었습니다. 설빙이 제작 지원한 드라마들이 두 나라에서 인기몰이를 하면서, 현지 업체들이 이를 드라마 속 설빙을 모방해 빙수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인데요. ‘설화빙수’ ‘설화설빙’ 등 유사한 이름에 메뉴까지 따라 한 짝퉁 업체들 때문에 설빙은 골머리를 앓죠.

짝퉁도 억울한데 10억 원 배상?


중국이야 워낙 짝퉁이 일반화된 나라이니, 별로 놀라울 것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겁니다. 하지만 짝퉁과 관련된 설빙의 고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요. 2015년 정식 중국 진출을 위해 가맹 사업 운영권을 넘겼던 중국 업체 ‘상해아빈식품’이 설빙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죠.

설빙이 중국에 1호점을 내기 전 이미 중국에는 다수의 ‘짝퉁 설빙’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으며, 설빙 본사는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라이선스비 10억을 받고 ‘마스터 프랜차이즈(가맹 사업 운영권 판매) 계약’을 맺었고, 현지 브랜드 관리가 부족해 영업이 순조롭지 않았다’는 것이 상해아빈식품의 주장인데요.

이에 1심은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이 중국에 유사상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증을 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설빙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은 이 판결을 뒤집습니다. “설빙은 중국 내 선출원·등록 상표가 존재해 ‘설빙’과 연관된 브랜드 영업표지를 등록하지 못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알았다.”며 “이를 계약 당시 상해아빈식품에 알리지 않아 신의성실의 원칙상 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밝힌 서울 고등 법원 재판부는 설빙이 상해아빈식품에 9억 5,65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죠.

하나부터 열까지 똑 닮은 매장


결국 진짜 설빙이 중국에 상륙하기 전, 짝퉁 설빙이 먼저 상표권 등록을 하는 바람에 상해아빈식품은 ‘설빙’이라는 이름으로 영업표지를 등록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인데요. 중국은 무단 도용이 의심되는지와 관계없이 무조건 먼저 등록한 쪽에 우선권을 주기 때문에, 짝퉁 브랜드가 오히려 더 떳떳하게 영업하는 결과가 발생한 겁니다.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비슷하길래 짝퉁 브랜드 때문에 장사가 안되는 지경에까지 이른 걸까요? 원조와 짝퉁이 있고 품질과 가격의 차이가 크지 않다면, 통상 원조를 찾아가는 게 사람의 심리인데 말이죠.

문제가 된 짝퉁 설빙은 간판부터 진동벨, 매장 내부 인테리어까지 웬만한 사람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설빙을 카피합니다. ‘설빙’이라는 표기 위쪽에 달린 빨간 도장 부분에 ‘설(雪)’자가 있는지 ‘원소(元素)’라는 글자가 있는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코리안 디저트 카페’라는 글씨와 빙수 그릇 모양이 들어간 진동벨조차 유사한 모습입니다.

끝나지 않는 도용 문제


중국 업체가 우리 제품을 베껴 매출을 올리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2016년 특허청의 발표에 따르면, 중국에서 선점당한 우리 상표는 1000개 이상, 피해를 입은 우리 기업은 600개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설화수’ 아닌 ‘설안수’, ‘수려한’을 베낀 ‘수여한’이 중국 내를 돌아다닌다는 사실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었죠.

파리바게뜨의 상황은 더욱 황당합니다. 중국에서는 지명을 상표명으로 사용할 수 없어, ‘파리’라는 지명이 들어가는 파리바게뜨는 여러 차례 상표권 출원을 거절당한 상황이었는데요. 이 틈을 타 중국의 한 업체가 Paris의 P만 B로 바꾸어 상표권 등록을 한 뒤, 파리바게뜨를 상대로 소송 및 고발을 제기합니다. 이는 중국 행정기관을 통한 소송으로 원조 기업을 압박해, 오히려 돈을 내고 상표권을 사게 하려는 상표 브로커의 전형적인 행태라고 하네요.

자사의 상표, 디자인, 메뉴를 그대로 베낀 업체가 중국에서 활개를 치는 것도 억울한데, 보상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물어줘야 하게 생겼으니 설빙 입장에서는 속이 탈 만도 합니다. 설빙은 상해아빈식품에 9억 5650만 원을 배상하라는 2심 재판부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상고를 준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과연 대법원은 다시 2심의 판결을 뒤엎고 설빙의 손을 들어줄지, 그 결과가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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