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대부분이 ‘막내’ 신분
29세에 MBC 아나운서 시험 응시
탈락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은 이유는?
아나운서는 매번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업 상위권에 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기만큼 아나운서를 꿈꾸는 이들도 많은 편인데요. 하지만 채용 공고가 그리 쉽게 나지 않고, 선발하는 인원도 적어 쉽게 도전하기 힘든 직업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현직 아나운서들 역시 여러 번의 낙방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데요. 여기 칠전팔기의 주인공이 또 있습니다. 사회생활의 8할을 막내로 지냈다는 임현주 아나운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 무작정 떠난 미국에서 찾게 된 꿈
임현주 아나운서는 방송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산업공학과를 전공했습니다. 이과 역시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을 좋아해 선택한 것이라, 전공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요. 오히려 동아리, 대외 활동 등을 더욱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막연히 대기업에 취업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대학 시절 내내 전공이 제 길일 거라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죠.”
그렇게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때, 그녀는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콜로라도로 어학연수를 떠났습니다.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기 위함이었죠. 그러나 미국 생활 역시 그녀에게 확신을 주지 않았는데요. ‘유학을 왜 온 걸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워싱턴 DC 주미 한국 대사관이 떠올랐습니다.
“대사관에서 인턴십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인턴 공고는 없었지만, 무급이어도 좋으니 일을 하고 싶다고 무작정 메일을 보냈죠. 수락 답장이 와 그날 바로 혼자 워싱턴 DC로 향했습니다. 인턴 생활을 통해 자유로운 시각을 갖게 되면서, 제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죠. 어릴 적부터 말을 잘한다는 칭찬을 들어왔었기에,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자연스레 관심이 기운 것 같습니다.”
◎ 무모했던 자신감, 그리고 불합격 통보
임현주 아나운서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아나운서 시험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고민보다 실행을 먼저 하는 성격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녀는 계속해서 시험에 도전하며 실전 경험을 쌓아갔습니다. “붙을 거라는 자신감으로 도전했습니다. 공고가 뜨는 곳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모두 응시했죠.”
첫 시험은 원주 MBC였습니다. 1차 카메라 테스트는 무조건 통과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죠. 그러나 결과는 불합격이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그녀는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더욱 적극적으로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경험이 없는 임현주 아나운서를 받아주는 스터디 그룹이 없어, 직접 팀원들을 모집해 스터디 그룹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준비와 시험 응시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필기와 카메라 테스트는 거뜬히 통과할 수 있었는데요. 최종 면접 응시 자격도 따낼 수 있었지만 합격의 문턱은 쉽사리 넘기지 못했습니다. 연이은 탈락으로 막막함을 느낄 때쯤 KNN 부산 방송에서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KNN은 지역 방송사이기에 아나운서 인원이 다소 적은 편입니다. 그래서 첫 아나운서 생활임에도, 다양한 방송을 경험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지상파 방송사를 향한 갈망이 남아 있었죠. “근무 당시 응시한 SBS 최종 면접까지 합격했습니다. 최종 면접이 3주간 인턴십을 하는 거라, 퇴사를 무릅쓰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아쉽게도 그녀는 또 한 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막막함을 안고 6개월간 백수 생활을 하다 KBC 광주 방송에 합격했는데요. 6개월간 근무를 하던 중, 그녀의 눈에 KBS 공고가 들어왔습니다. 이미 한 번 탈락의 경험이 있는 곳이었지만, 마지막 기회라는 판단으로 도전을 하게 되었죠.
당시 임현주 아나운서의 나이는 27세였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지금이 마지노선이 아닐까?’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절박한 마음으로 시험에 임했죠. 그러나 이러한 마음이 면접에서 독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결국 어색한 모습만을 보여주었는데요. 결국 그녀는 KBS 최종 면접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 꿈에 그리던 지상파 방송사 합격 소식
연이은 탈락으로 좌절하고 있을 때 JTBC 아나운서 1기 모집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KBS 면접에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서인지,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JTBC는 이제 막 개국을 하던 방송국이었기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모든 게 새로운 회사였습니다. 그러나 회사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니, 프로그램이 수시로 개편되거나 폐지되곤 했습니다. 일관되게 제 색깔을 찾기 힘들다는 아쉬움이 있었죠.”
지상파에 대한 미련도 선뜻 버릴 수가 없었는데요. 그녀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29세에 진짜 마지막 도전을 하게 됩니다. 당시 지원자가 3,700명에 이를 정도로 경쟁이 심했지만, 불합격을 이겨냈던 경험 덕분에 임현주 아나운서는 단단한 마음으로 시험에 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랜 노력 끝에 합격을 거머쥐게 되었죠.
꿈꾸던 MBC에 입사하게 되었지만, 파업 이후라 회사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오히려 임현주 아나운서에게 MBC 입사 후 4년은 가장 자존감이 떨어지는 시기였죠. “고생해서 얻은 단비인데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방송을 해도 자부심을 느낄 수가 없었어요.” 이때 한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나운서 지망생 시절엔 늘 훌륭한 앵커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목표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죠. 이렇게 되니 앞으로 어떤 걸 바라가며 살고, 어디서 보람을 찾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때를 계기로, 목표가 인생의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순간이었죠.”
◎ 안경 쓴 아나운서부터 유튜브 채널까지
이러한 결심이 담긴 행동이 뉴스 진행에서 ‘안경’을 낀 것이었습니다. 파업이 끝난 후 MBC가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임현주 아나운서는 ‘그동안 눌러왔던 것들을 자유롭고, 재밌게 해보자’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그라들었던 자신감에 다시 불씨가 붙은 것이죠. 자연스러운 모습을 어떻게 담을까 고민하던 중, ‘안경 선배’ 김은정 선수의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퇴근 후 카페에 앉아 해당 기사를 정리하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침 6시 뉴스를 진행하기 위해선 매일 새벽 2시 30분이면 일어나야 했는데요. 부족한 수면 시간에 스튜디오의 강한 조명이 더해지니, 눈이 늘 피곤해지는 게 일상이었죠. 이러한 일상이 함께 떠오르면서 ‘그럼 안경을 끼면 되는 거잖아?’라는 생각으로 번져갔습니다.
“동료와 지인들에게 안경 착용 여부를 물었을 때, 다들 ‘왜 안 되는 거야?’라는 반응이었습니다. 대부분 지지해주니, 저도 어느 순간 안경을 끼게 되었죠. 처음엔 보도국에서 다소 의아한 의견을 내비치셨습니다. 선배들은 자칫하면 ‘튀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며 저를 걱정해주었죠. 그런데 제가 안경을 낀 모습이 이슈가 되면서 대중들에게 지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 덕에 이젠 안경을 편하게 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것도 재밌는 일을 찾아 떠난 여정 중 하나입니다. 아무래도 아나운서가 할 수 있는 방송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임현주 아나운서는 다른 장르에 대한 갈증을 느껴왔는데요.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드러낼 채널을 고민하던 중 눈에 띈 것이 바로 유튜브였습니다. 시작 당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지상파 아나운서는 극히 드물었죠.
그렇게 그녀는 ‘방송에서 할 수 있는 건 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유튜버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파격적인 분홍색 가발도 써가며, ‘임현주’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죠. “구독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여러 콘텐츠를 선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튜브 채널의 1순위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목적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니, 오히려 유튜브를 통해 제가 아나운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임현주 아나운서는 “앞으로도 나다움을 찾으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MBC 아나운서가 될 때까지 끝없이 도전한 것도, 뉴스 진행을 할 때 안경을 착용한 것도 어떻게 보면 그녀의 ‘나다움 찾기’의 하나인 셈이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명확히 아는 그녀이기에, 바라던 것들을 다 쟁취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