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야구선수 꿈꿔
한국인 최초로 프리미어 리거 입단
국가대표로도 눈부신 활약
은퇴 선언 후 결혼

전 국민을 빨갛게 물들였던 2002년 월드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추억입니다. 4강 신화를 달성한 황금 세대 일명 히딩크호의 눈부신 활약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물론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고, 잘 해주었지만 그중 아직 어린 신인임에도 눈에 띄었던 인물이 한 명 있었는데요. 바로 캡틴 박, 박지성 선수입니다.

포르투갈전의 멋진 골과, 스페인전의 승부차기 성공 등 주전으로 맹활약한 그의 모습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그랬던 그의 원래 꿈은 축구 선수가 아닌 야구선수였다는데요. 어쩌다 축구 선수를 선택하게 되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인지 알아보겠습니다.

◎ 야구선수를 꿈꾸던 10살 소년

1981년생으로 올해 38세인 박지성은 원래 야구 선수를 꿈꾸던 소년이었습니다. 이에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단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4학년이 되면 받아주겠다는 말을 듣고 포기하게 되었죠. 이후 수원 세류 초등학교로 전학을 간 그는 자연스럽게 축구부에 들어가게 되면서 축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그때 야구를 했다면 프로 선수가 못 됐을지도 모른다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죠.

175cm의 신장으로 축구 선수 치고는 왜소한 신체 조건으로 대학 입학 때 고전을 겪은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였는데요. 이에 엄청난 폐활량을 갖게 되어 아무리 뛰어도 지치지 않는다는 ‘두 개의 심장’이란 별명이 붙었죠. 실제로 그는 공수 멀티플레이가 모두 가능할 정도로 넓은 활동 반경을 보이는 강철 체력의 소유자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그는 한국의 정상을 넘어서 세계에서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UEFA 클럽 어워즈와 UEFA 올해의 팀 후보에 선정되었는데요. 이외에도 발롱도르 후보 50인에 뽑혔고, FIFA ‘Man of the Match’의 아시아 선수 최다 선정 기록도 보유하고 있죠.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입단

그는 2000년 19세의 나이로 일본 교토 퍼플 상가에서 프로로 데뷔하였습니다. 2002년 그곳에서 일왕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을 거둔 그는 이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에 들어가 선수 생활을 이어갔는데요. 이곳에서도 네덜란드 리그 우승, 챔스 4강 달성 등 많은 기록을 세웠죠.

그의 다음 행선지는 세계 최정상급 팀 중 하나인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였습니다. 당시 그는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 리거로 엄청난 화제가 되었는데요. 전 세계 정상급 선수들만 있음에도 그는 두각을 드러내며 종횡무진하였죠. 그는 프리미어 리그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챔스 결승전 주전 출전, 맨유 주장 등의 업적을 쌓으며 전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였습니다.

이후 2012년 7월 잉글랜드 퀴즈 파크 레인저스 FC에 들어가 약 1년간 선수로 뛴 그는 2013년 8월 과거에 몸담았던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에 돌아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2014년 6월까지 활동한 뒤 현역 선수로의 막을 내리며 은퇴하였습니다.

◎ 히딩크호의 주역, 한국 축구의 정신적 지주

그는 프로 활동 외에도 국가대표로서 수많은 업적을 세워 한국 축구의 아이콘 같은 존재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그는 히딩크호 선수 중 유일한 K리그에 소속된 적 없는 선수인데요. 이후 유럽 빅 리그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기량을 만개해 돌아와 한국 축구 대표팀의 절대적인 에이스이자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하였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맹활약을 보여준 그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으며 ‘캡틴 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출전한 모든 월드컵에서 골을 성공시켰는데요. 이는 전 세계에서도 몇 없을 정도로 어려운 기록이죠. 또한 대한민국 월드컵 4강, 원정 첫 승, 원정 첫 16강 위업을 달성하며 ‘한국 축구의 아이콘’, ‘현역 아시아 No.1 플레이어’ 등의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 33세 이른 나이에 은퇴, 가정 이뤄

이처럼 한국 축구의 우상이던 그는 2014년 5월 은퇴 선언을 하였고, 33세 이른 나이에 은퇴하며 현역 선수 생활을 종결하며 공부를 시작했는데요. 2016년 3월에는 FIFA 마스터 코스에 합격, 9월에는 영국 드몽포르대 스포츠 매니지먼트 전공 석사 과정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공부에 임하겠다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국제 스포츠 매니지먼트와 법률 및 인문학 석사 과정을 공부한 그는 2017년에는 국제 축구 평의회 자문 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축구 행정가로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그는 해설가로 발탁되어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객원 해설 위원, 러시아 월드컵 SBS 정식 해설 위원에 자리했는데요. 비유럽 국가 출신 최초로 맨유 앰버서더에 선정되기도 하여 연봉 개념 활동비 1억 5천만 원을 받으며 활동하기도 했죠.

또한, 그는 은퇴 이후 7월 27일 김민지 아나운서와 화촉을 올리며 새로운 가정의 일원이 되었는데요. 2018년 집사부일체에 출연하여 연애 시절부터 찍은 사진으로 구성한 박지성 박물관에서 직접 쓴 손 편지를 전달하며 프러포즈한 스토리를 전하며 로맨티시스트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는 2015년에는 득녀를, 2018년에는 득남을 한 두 아이의 아버지로, 최근에는 부인의 유튜브 방송 채널 ‘만두랑’이나 다른 유명인들의 SNS에서 얼굴을 보이며 근황을 전하고 있습sl다.

은퇴 선언 당시 많은 국민들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자아낼 만큼 박지성에 대한 한국인들의 사랑은 대단했는데요. 해설가로 돌아와 다시금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죠. 그동안 가장 중요했던 축구보다 부인인 김민지 아나운서가 더 중요하다는 로맨티시스트 박지성. 이제는 한 명의 남편으로서, 두 아이의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멋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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