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의 뿌리 장충동
기업 이미지 챙기고 풍수지리 고려
CJ 타운으로 발돋움하는 중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 안정환이 ‘마이리틀텔레비전’에 나와 축구선수들의 사생활을 폭로하며 큰 웃음을 안겼던 바 있다.
안정환은 “최용수 선배가 족발 심부름을 많이 시켰는데, 장충동까지 갔다와야 해서 심부름 다녀오는 길이 너무 멀고 추웠다”는 일화를 공개했다.
이렇듯 장충동은 이른바 ‘족발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6·25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대거 서울로 몰리면서 일본인들이 살다 남기고 간 적신 가옥이 많았는데, 그 곳에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한 피난민 촌에서 생계를 위해 족발을 팔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평안도 실향민들에 의해 시작된 족발집들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결국 ‘족발’하면 ‘장충동’을 떠올릴 만큼 유명해졌다. 맛있는 음식의 이면에는 우리 선조들의 아픔과 설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장충동은 단순히 족발의 동네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가 얽혀있다.
삼성가의 스토리가 대표적이다. 조선왕조가 전주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면, 삼성은 장충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병철 회장이 거주했던 동네인 장충동은 ‘삼성가의 뿌리’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있는 곳이다. 지난 2012년에는 故 이건희 전 회장이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집을 350억 원에 매입했다.
이 전 회장은 615평에 달하는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하면서 그 가치를 더욱 높였다.
물론 해당 건물은 사무실과 직업훈련소로 개조되면서 지위를 잃는 듯했으나, 소유권 자체는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자녀들에게 다시 공동상속되면서 ‘삼성 이미지’를 놓지 않았다.
이는 삼성그룹이 12조 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장충동의 부동산 차익을 이용한다는 해석이 많았다. 이로 인해 보안도 엄격했다.
기자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는 이유로 CJ 소속 직원이 “이곳은 사유지니 사진촬영이 안 된다”고 안내할 정도였다.
이렇게 삼성이 휘어잡던 장충동은 삼성 계열사 중 CJ가 바통을 이어받아, 이른바 ‘CJ 타운’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다.
장충동에 자리 잡은 삼성 계열사 중 하나는 신라호텔이다. 그러나 신라호텔은 확장성이 부족하고, 코로나19로 인해 부침을 겪으면서 장충동 내 입지를 확장하지는 못했다.
반대로 이 기회를 이선호 CJ 그룹 경영 리더가 차지하고 있다. CJ 이 회장은 공동 상속된 장충동 땅을 다시 매입하고, 올해 1월부터 단독주택을 신축했다.
삼성 일가에서 사고 팔고를 반복하면서 건물을 허물고 짓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CJ 타운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실제로 CJ 이재현 회장 집무실과 연구실, 연구원휴게실, 세미나실, 주택을 포함해 CJ 미래 경영연구원 등의 부지가 모두 장충동에 모이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장충동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풍수지리학적인 해석 때문이기도 하다.
장충동은 서울에서 드물게 산세가 좋은 명당으로 손꼽힌다. 특히 ‘장군이 지휘하는 장군대좌형 명당’으로, 주변 산세가 진을 치고 주둔지처럼 적군을 막아주는 지형이기 때문이다.
풍수지리학자가 보는 위치로는 용의 기운이 모인 자리라고 부를 정도다. 삼성이 사무실, 사업지 등을 선정할 때 풍수지리를 중요한 요소로 고려한다는 정설이 상당히 부합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