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은 우리나라 전통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귀에 그리 익숙하지만은 않습니다. 현재 유행하는 가요와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죠. 실제로 많은 국악인은 우리 소리를 알리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여기 국악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가 또 있습니다. 퓨전 그룹 조선 블루스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소리꾼 김우정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 가수를 꿈꿨던 어린 소녀
가수를 꿈꾸던 김우정 씨는 TV에 출연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판소리를 배우면 방송에 나올 수 있다는 말에, 판소리를 전공한 부모님의 지인을 찾아가게 되었는데요. 소질을 보기 위해 소리 몇 마디를 따라 부르니, 스승님께서 ‘재능이 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취미로 배우려던 판소리가 그녀의 업이 된 순간이었죠.
그렇게 9살에 국악의 세계에 발을 담근 김우정 씨는 한순간에 ‘신동’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꿈꿔왔던 방송 출연에도 성공했죠. 사람들은 그녀의 무대를 보고 ‘감정 표현이 대단하다’는 반응을 보였는데요. 심지어 판소리 명창 조상현 선생에게도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사실 어린 나이에 판소리 속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데요. 감정을 익혔던 비결을 묻자 그녀는 ‘말을 아끼는 스타일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감정 표현을 말로 다 전달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속으로 지니고 있는 감정을 심청가와 춘향가와 같은 인물에 잘 녹여낼 수 있었죠.”
◎ 국악 신동에게 찾아온 권태기, 그리고 극복
김우정 씨는 오랜 시간 판소리를 해오다 보니 다른 직업을 가질 거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그런 그녀가 판소리를 잠시 쉬었던 시기가 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자 다시 피어난 ‘가수’라는 꿈 때문이었죠. “2학년 때까지 2년 정도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음악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죠.”
방황하는 그녀를 보고 아버지께서 조언을 남겼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되기보다는 소리를 통해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추천하셨다고 합니다. 국악과 가요에 모두 발을 담글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며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신 것이죠. 그 말에 김우정 씨는 자신이 바보 같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소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쉰 기간에 비해 소리가 잘 나왔습니다. 그러나 자신감은 많이 떨어진 상태였죠.” 이러한 생각은 대학생이 되자 더 짙어졌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니 잘하는 사람도 많고, 공연의 퀄리티도 차원이 달랐죠. “제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걸 느끼게 된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국악을 대하는 저의 태도가 완전히 바뀔 수 있었죠.”
변화된 마음가짐으로 출전한 대회가 바로 ‘임방울 국악제’였는데요. 고수 역할을 할 후배를 찾는 일부터, 연습까지 김우정 씨의 힘으로만 준비한 대회라고 합니다. 노력이 통했을까요. 그녀는 당당히 1위를 거머쥐게 되었는데요. “수상을 해서 인정받고 싶다고 생각한 대회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그 희열감이 남아있네요.”
◎ 퓨전 그룹 ‘조선블루스’로 국악 대중화에 앞장서···
현재 김우정 씨는 퓨전 국악 앙상블 밴드 ‘조선블루스’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원래 조선블루스는 대학가요제 출전을 위해 모였던 프로젝트 성 팀이었는데요. 녹음 파일을 제작하다가 뮤직비디오를 찍게 되고, 결국 음원까지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그룹은 아니지만, 멤버 전원이 그저 ‘좋아서’했기에 지금까지 조선블루스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조선블루스의 노래 ‘작야’로 <너의 목소리가 보여>라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을 보고, 김우정 씨와 피아노 멤버가 직접 작곡한 곡이죠. “춘향가 중 하나인 이별가를 참고해 현대적으로 풀어냈습니다. 사람들이 저희 노래를 듣고 간접적으로나마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곡입니다.”
사람들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방송을 보고 국악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늘어가게 되었는데요. 실제로 조선블루스의 공연을 직접 찾아오는 팬들도 많아졌다고 합니다. 김우정 씨는 “앞으로도 한국의 정서를 담은 가요를 만들고 싶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김우정 씨가 국악을 하게 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방황도 하고, 싫을 때도 많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그마저도 정이 들었다고 합니다. 국악이 있었기에 지금의 김우정 씨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녀는 ‘삶보다 더 긴 여운을 줄 수 있는 예술가’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인데요. 매 순간 소리에 대해 고민하는 그녀라면, 그 목표는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