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지방에 있는 학교가 폐교한다는 소식은 이제 더는 특별할 일이 아닌데요. 하지만, 강원도 산자락에 위치한 한 학교가 곧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미국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여럿을 매년 배출하는 민족사관고등학교가 그 주인공이기 때문인데요. 지역 신문에는 민사고에 합격한 학생이 신문에 날 정도로 명성도, 학생들의 진학 결과도 빼어나기로 정평이 난 ‘원조 자사고’ 민사고가 어쩌다 폐교를 논하게 됐는지에 대해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정부의 자율형 사립고 폐지 정책에 따라오는 2025년 3월까지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 모두는 일반고로 전환할 예정인데요. 이미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상태입니다. 교육부는 그간 외고, 자사고, 국제고 등에 부여된 학생 선발권이 사교육 과열을 부추겨 계층 간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보고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인데요.
당장 4년 뒤 일반고 전환을 앞둔 민사고는 지금의 교육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대안교육 특성화고’ 지정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자진 폐교 밖에 답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특성화고교의 한 종류인 대안교육 특성화고는 전국에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데다 자유롭게 교과를 편성할 수 있어 지금의 교육방식을 그대로 이어나갈 수 있는 지금으로선 유일한 대안이라 할 수 있는데요.
민사고가 일반고로 전환하느니 폐교가 낫다는 다소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민사고는 현재 ‘임진왜란의 이해’, ‘천체관측’, ‘심리학’ 등 소규모 교과를 포함해 약 300개의 과목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자사고의 지위가 사라지면 이런 교과를 유지하는 대신 그간 전체 수업의 30%에 그쳤던 국어·영어·수학 등 필수교과의 편성을 대폭 늘려야 합니다. 교사 선발권도 사라져 그간 교직원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석박사급 인력 채용도 힘들어지는데요. 또한, 지금처럼 전국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것 대신 전체 인구의 3%의 그치는 강원도에서만 학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한만위 민사고 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반고로 전환되면 전국에서 학생을 뽑아 최고의 인재를 양성하는 지금의 교육방식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라며 “건학 이념을 지키지 못한다면 자진 폐교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자사고 지위를 지키려 교육부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하고 승소까지 했음에도 다시 자진해서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학교도 속속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숭문고등학교, 한가람고등학교, 동성 고등학교가 그러한데요.
이들 학교가 자발적으로 자사고 지위를 내려놓은 이유는 경제적 이유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간 자사고는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강조하며 일반고의 3배에 달하는 학비를 학생들로부터 받아왔는데요. 학교 재정과 직결되는 학생 충원율이 해마다 감소하면서 학교 재정에도 큰 타격을 꾸준히 입어온 것이죠.
이외에도 올해부터 고등학교에 전면 무상교육이 시행되고, 고등학교 졸업 정보를 블라인드하는 대학 입시 정책이 시행되면서 자사고가 누리던 후광효과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이유도 있는데요. 이는 자사고들의 일반고 전환 입장문에서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전흥배 숭문고 교장은 일반고 전환을 밝히는 입장문에서 “자사고들이 학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어 존립을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라며 “개정 교육과정 시행으로 자사고가 일반고와 차별화할 수 있는 교육 여건도 많이 줄었고, 고교 학점제 시행이 이뤄지면 자사고의 틀을 굳이 유지하지 않더라도 숭문고가 추구하는 교육 활동을 구현할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향후 정부가 자사고 폐지 정책에는 가속도가 붙을 것이란 업계 전망이 나오는데요. 정부는 2025년 이전까지 일반고로 조기 전환하는 경우 재정, 제도적 혜택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예컨대 서울시교육청은 자발적으로 일반고 전환을 택한 학교들이 기존 재학생들의 등록금까지 감면할 수 있도록 ‘일반고 전환 지원금’을 지원하는 등 당근책을 제시하기도 했는데요.
이외에도 현재 재정상의 어려움이 큰 기존 자사고의 특성을 고려해 재정 지원을 확대함과 동시에 일반고 전환 이후에도 교과특성화학교 지정, 고교학점제 선도학교 등의 제도를 통해 고요의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로 했습니다.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난 16일 동성·숭문·한가람고의 일반고 전환과 관련해 “남은 자사고도 자발적으로 일반고 전환을 택한 세 학교의 선례를 참고해 일반고 전환이라는 시대정신에 동참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는데요.
한편, 이와 반대로 평등교육의 실현을 위해 자사고를 폐지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반론도 나옵니다. 교육계에서는 일반고로 전환한 자사고가 ‘신흥 명문고’로 급부상해 주변 부동산 값이 큰 폭으로 뛰는 등 또 다른 교육 특구 선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하는데요.
종로학원하늘교육 관계자는 “특목고 일괄 폐지 후 학교가 새로운 지역으로 이전할 경우 명문학군의 부활인 ‘강성 일반고’ 선호 현상이 뚜렷해질 수 있다”라며 “이는 학생 쏠림 현상으로 이어져 사교육 밀집 현상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취지와도 맞지 않는 결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지금까지 2025년까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자사고들의 현재 상황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여러분들은 평등 교육을 위해 자사고 폐지를 추진하는 현 교육부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