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헬스장, 그다음은 치과, 영어학원과 카페를 거쳐 국회의원 선거 비서관까지. 도전하는 아르바이트마다 시급 인상이나 정규직 제안을 받아온 사람이 있다. 아르바이트생에서부터 직원, 고용주의 입장까지 모두 경험한 뒤 지금은 이들을 서로 이어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박하연 씨. 올봄에는 20대 청년들을 위한 커리어 조언을 담은 <사회생활은 처음입니다만>을 출간하며 베스트셀러라는 경력까지 추가했다. 자신의 책을 ‘나의 직업적 사명문’이라 소개하는 커리어 코치 박하연 씨를 만나봤다.
생소한 직업, 커리어 코치에 대해 궁금해요. 소개 부탁드려요
“단순히 취업할 곳을 찾아주는 게 아니라 내담자의 성격, 환경, 경력 등 모든 부분을 고려해서 진로와 직업을 함께 고민하고 가이드를 제시해 주는 일이에요.” 한국에서 아직 생소한 커리어 코치라는 직업의 정의에 대해서 묻자, 박하연 코치로부터 돌아온 대답이다. 자기소개서 작성을 도와주거나 면접 팁을 전수하는 건 커리어 코치 업무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
직업 상담사로 일하던 시절에는 IT 계열 취업 희망자들만을 대상으로 취업 컨설팅을 진행했다. 그러나 ‘막상 공부해보니 이쪽 일이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고민을 토로하는 내담자들도 생겼고, 이들을 좀 더 제대로 도와주려면 스펙트럼을 넓혀 다른 대안을 제시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박하연 코치가 스스로의 커리어 전환을 시도한 이유다. 저마다의 강점을 발견하는 일로 시작해 강점을 직업으로 연결하는 방식, 입사 후의 커리어를 개발시키는 방안을 함께 고민하는 것으로 업무의 범위를 확대했다.
“꿈이 없는 청년들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진로와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조력하고, 그다음에는 취업을 위해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작성법, 면접법까지 꼼꼼하게 코칭 합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만큼 입사 이후의 경력 계발에 대한 부분까지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것이 커리어 코칭의 전반적인 패러다임이에요. 다양한 직군에 대한 넓은 이해도와 개인의 특성, 적성을 파악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일이죠.”
<사회생활은 처음입니다만>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이미 구직자들 혹은 어디서부터 구직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청년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는데 책까지 내기로 결심한 건, 코칭을 진행하면서 느낀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아르바이트도 진로 선택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는 사회생활의 일부분인데,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아르바이트를 단순한 돈벌이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자소서에 들어갈 활동이나 경력들이 조각난 상태로 각자 다른 방향을 보고 있으면 자소서는 ‘자소설’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20대 초반을 지나온 내담자를 과거로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 이제부터 경제활동을 시작해야 할 청년들에게는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싶었죠. 그래서 처음에는 아르바이트에만 초점을 맞추고 원고를 거의 다 작성했는데, 최저시급이 오르고 아르바이트 시장이 위축되면서 타깃 독자를 사회 초년생 전체로 확대했어요. 저녁과 주말을 반납하고 쓴 원고를 갈아엎어야 했을 때는 눈물 날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것도 다 좋은 경험으로 느껴지네요.”
베스트셀러가 된 책,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어디인가요?
<사회생활은 처음입니다만>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속도를 결정할 수 있도록 ‘나를 공부하는 방법’을, 2장에서는 당초 구상했던 대로 아르바이트 하나도 남다르게 해내는 비결을 담았다. 이어 3장에서 ‘일머리 좋은’ 신입사원이 되기 위한 과정을 소개한 뒤, 4장과 5장에서는 근로기준법과 취업 준비 팁, 똑똑하게 원룸 구하는 방법까지 실용적인 정보들을 한눈에 들어오게 정리했다.
“각 장마다 주요 타깃 독자층이 다르지만, 모든 분들이 ‘나다움’을 찾아가는 1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주셨으면 해요. 친구가 좋아하는 게 뭔지, 형제가 싫어하는 게 뭔지는 잘 알면서도 나의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죠. 저는 매일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스스로에 대한 피드백을 해요. 오늘 잘한 일은 무언지, 부족했던 점은 뭐였는지,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같은 것들이요.” 이런 노력을 꾸준히 하다 보면 자신을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성장과 변화까지 덤으로 따라온다는 게 박하연 코치의 조언이다.
나를 안다는 확신이 커리어 전반에 걸친 만족감을 가져다준다면, 근로기준법은 일하는 매 순간 근로자의 등을 떠받치는 힘을 발휘한다. 공부하기도, 정리하기도 만만치 않았을 근로기준법에 한 장 전체를 할애한 이유는 백지상태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자신이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 청년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서였다.
“열정페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기업문화를 단절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마땅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해야 해요. 그러려면 우선 알아야겠더라고요. 애초에 입사하지 말아야 할 불합리한 회사들을 걸러낼 수 있도록요. 물론 처음부터 100% 완벽한 직장은 찾기 힘들어요. 신입일 때는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도 바로 얘기하기 힘들 수 있죠. 하지만 법적으로 내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알고 일하는 것과 모르고 일하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생각해요.”
직장에서 사랑받는 성격,
혹시 타고난 건 아닌가요?
헬스장 업무를 항목별로 정리해 카운터에 붙이고, 카페에서 일할 때는 모든 음료의 제조 과정을 틈틈이 시뮬레이션 하는 사람. 시키지도 않았는데 근무하는 타임의 매장 매출을 끌어올리려 고민하는 아르바이트생. 박하연 코치가 일을 그만둔다고 하면 모두들 나서 시급 인상이나 정규직을 제안했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의문도 생긴다. 어떻게 20대 초반부터 저렇게 똑 부러지게 일할 수 있는 걸까? 남과 똑같은 시급을 받는데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왜 드는 걸까?
본래 성격이 긍정적이라 가능한 일이 아닌가, 사회생활에 최적화된 채로 태어난 건 아닐까 생각했다면 그건 오해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저는 원래 불평쟁이였어요. 고등학생 때는 뭘 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둡고 부정적인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죠. 그때 만난 한 멘토 분이 제 인생을 바꿔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청소년 대상 강연회에서 만난 분이 너무 멋져 보여서 그분을 하나하나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그분을 닮아가고 있었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을 때는 롤모델을 정해서 모방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청년들이 맞닥뜨리는 온갖 사회생활의 고충들이 절묘하게 한 사람만 피해 갔을 리는 만무하다. 적절한 시기에 훌륭한 멘토를 만나 20대를 멋지게 살아낸 박하연 코치에게도 마음 아픈 순간들은 있었다. “궁금한 건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고, 불합리한 일들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성격이라 수직적인 서열 문화에 익숙한 상사나 사장님들로부터는 눈총도 받았어요. 그래도 일을 안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잘하고 싶어 묻는다는걸, 결국에는 인정받았죠. 훨씬 경직된 조직문화를 경험해온 베이비붐 세대나 386 세대의 마음을 이해해보고자 노력한 것도 소통을 조금이나마 쉽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네요”
동생분과 카페를
운영해본 적도 있으시죠?
2015년에는 동생과 함께 카페도 운영했다. 알바생, 직원의 입장뿐 아니라 사장님의 입장도 경험해 봤다는 이야기다. 알바생일 때는 월급날이 가장 기다려졌는데, 사장이 되고 보니 그날이 다가오는 게 제일 무서웠다는 박하연 코치는 메르스로 매출이 크게 감소한 이후로 다른 일로 돈을 벌어 알바생 월급을 충당하기도 했단다. 이렇게 어렵게 월급 주는 직원인데, 한번 뽑을 때 제대로 뽑고 싶은 게 당연하다. 그의 기억에 가장 오래도록 남은 알바생은 누구일까?
“한 지원자의 면접을 마치고 동생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처음 보는 손님이 들어와 커피와 브런치를 주문했어요. 그분은 노트북을 켜고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었죠. 그런데 다음 지원자의 면접 시간이 되자 그분이 일어나 입사지원서를 내미는 거예요. 나중에 여쭤보니 본인도 카페가 어떤 곳인지 미리 느껴보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미리 카페 블로그와 후기 등도 철저히 조사하셨고요. 당시 카페 아르바이트 경험은 없으셨지만, 이분이다 싶어서 뽑았어요. 그리고 그런 저의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걸 몸소 증명해 주셨죠. 지금은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기자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만간 TV에서 보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서점가를 뒤덮은
퇴사 열풍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퇴사’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무려 538 건의 결과가 나온다. 자기계발, 에세이, 경제·경영서 등 장르도 다양하다. 딱 맞는 진로를 함께 찾아주는 게 일인 커리어 코치의 입장에게 퇴사 열풍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지금까지 취업을 위한 책은 많았지만, 퇴사에 관한 책은 드물었잖아요. 이제야 그 균형이 맞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잘 만나는 것만큼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다만 막연하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퇴사하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지금 한 템포 쉬어가는 게 필요해서 퇴사하는지, 더 나은 커리어 탐색을 위해 그만두는지 확신이 없으면 퇴사 전보다 더 우왕좌왕하게 될 수 있으니까요. 실업급여 받는 세 달 중 두 달 반 정도를 신나게 놀다가 급하게 구직을 하며 절망하는 친구들도 만나봤어요. 그렇게 들어간 회사에서는 또 금세 퇴사하고 싶어질지 모르니, 이런 점들을 잘 고려해주셨으면 해요, ”
청년들을 위해 추천하고 싶은
책이나 강연이 있나요?
최근 박하연 코치는 미래 일자리 전망에 관한 예측서 <일자리 혁명 2030>을 읽고 있다. 인공지능, 3D프린터 등 IT 접목 분야에서 생겨날 일자리에 대한 기대감이 피오르게 하는 이 책을, 미래 직업에 대한 큰 맥락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단다. 책 출간에 대한 막연한 계획만 있던 시절 수강했다는 라온북 조영석 대표의 책쓰기 강의도 추천했다. “단순히 책을 쓰는 기술적인 방법만 안내하는 강의는 아니에요. 시대의 흐름에 대한 전체적인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고, 어떻게 스스로를 브랜딩 하는지 배울 수 있죠.”
카피라이터 최현정 저자의 <싫다면서 하고 있어 하하하>라는 에세이도 그의 추천 목록에 올랐다. “제목이 재미있죠? 제 책이 성장과 변화를 추구한다면, 이 책은 폭풍 같은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어주는 책이에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을 내겠다는 버킷리스트를 20대에 이뤘으니, 이제 10년마다 책을 출간하는 걸로 목표를 수정했다는 박하연 코치. 그렇게 하면 독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매 1분 1초를 꽉 채워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독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그의 다음 책을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걸까?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퇴근 후부터 행복하다는 분들이 많잖아요. 직장에서는 괴롭고, 이 불행을 상쇄하기 위해 퇴근 후에 이런저런 활동들을 하시죠. 그것도 방법이지만, 이왕이면 깨어있는 시간의 반 이상을 보내는 직장생활도 행복하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각자 행복의 기준은 다 달라요. <사회생활은 처음입니다만>은 성장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위한 책이에요. 만약 지금 충분히 행복하고 변화를 원치 않는다면 저는 그걸 존중해요. 모두 스스로가 행복한 삶의 방식을 찾았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