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매일 회사로 향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월급이 아닐까 하는데요. 직장을 옮길 시에도 연봉협상은 이직자에게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억대 연봉과 더불어 명예까지 한 번에 거머쥘 수 있음에도 서로 하기 싫다며 등 떠미는 직장이 있다고 합니다. 과중한 육체노동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고, 밥 먹을 겨를도 없이 매일같이 야근에 시달려야 하는 직업이 아님에도 억대 연봉 직책을 줄줄이 고사한다는 이 직종의 정체가 무엇인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지방의 한 중소 제조업체의 대표 A 씨는 지난해 상반기 공장보다 경찰서를 더 자주 방문해야 했습니다. 직원이 쓰레기통에 버린 담뱃불이 번져 공장에 불이 나자 A 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수차례 조사를 받아야 했던 것인데요. 이는 지난해 1월경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산업 재해 발생 시 기업 오너에 대한 처벌이 대폭 강화된 데 따른 것입니다. A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다행히 발화의 원인이 직원의 부주의에 의한 것이라는 게 밝혀져 화를 면했지만 “언제든지 범죄자로 몰릴 수 있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토로합니다.

최근 건설 현장에서는 CEO 자리를 기피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데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불과 4달여를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일 해당 법안의 시행령이 규제 개혁심의위원회를 통과했는데요.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주를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하는 등 기업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높인 것이 특징인 해당 법안은 건설업계 CEO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계 단체장들은 지난해부터 일찍이 “처벌이 너무 과도하다”라며 중대재해법 입법을 중단하는 단체 행동에 돌입한 바 있는데요. 징역 ‘몇 년 이하’로 상한선을 정하는 대부분의 처벌 조항과 달리 ‘징역 5년 이상’으로 처벌 최소 규정을 정한 범죄는 그간 살인, 아동·청소년 성폭행 등 극소수의 흉악범죄에만 적용돼 왔기에 경제계에서는 중대재해법 입법을 놓고 극심한 반대 의사를 표명해왔습니다.

업계에서는 건설업 특성상 아무리 노력해도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CEO들은 앞으로 언제든지 범죄자로 내몰릴 수 있다는 하소연이 오가는데요. 국내 중소 건설사 B는 얼마 전 CEO 자리에 내부에서 승진한 전문 경영인을 선임했습니다. 원래는 창업주의 아들이 물려받을 것이란 게 공공연한 사실이었지만 책임 경영을 위해 전문 경영인을 선임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회사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창업주 최측근 인사들은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괜한 송사에 휘말리는 일을 없애기 위해 CEO를 교체한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아예 최고안전책임자(CSO) 직을 신설하는 건설사도 늘고 있는데요. 지난 몇 년 새 급성장한 중견 건설사들은 변호사, 안전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CSO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데요. 서울 소재 대학의 안전 관련 학과 교수 박모 씨는 “최근 동료 교수사 국내 굵직한 건설 업체의 CSO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곧바로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는 얘기를 들었다”라며 “그도 그럴 것이 직원 부주의로 사고가 일어나도 10억 원 이상의 벌금을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데 누가 하려고 하겠냐”라고 말했습니다.

더군다나 경영에 참여하는 CEO나 대주주들의 경우 CSO에게 안전 책임을 맡긴다 하더라도 사고 발생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하는데요. 중대재해법은 건설 현장을 실질적으로 지배, 운영, 관리하는 주체가 책임을 지도록 명시하고 있기에 경영에 여전히 참여하는 CEO의 경우 처벌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0일 한국주택협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한 변호사는 “CEO가 혹여 법인의 공식 조직도에 없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권한을 행사한다면 얼마든지 경영책임자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게 공통적인 견해다”라고 밝혔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대재해법이 오히려 건설 현장을 더 위험에 빠트리게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나오는데요. 사고 현장의 책임을 CEO로 또렷이 지목하니 막상 사고가 일어나는 현장 책임자들의 책임감이 기존보다 느슨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한 건설업체 CEO는 “지난해 1월 중대재해법이 통과된 이후 현장관리 책임자가 크게 느슨해진 것 같다고 느낀다”라며 “일부러 사고를 내지는 않겠지만,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안전사고 책임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까 걱정이다”라고 토로했습니다.

반면, 중대재해법은 진즉 통과됐어야 할 법안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만만치 않은데요. 그간 근로기준법, 안전·보건 확보 의무 등을 지키지 않아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 숱하게 나왔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국회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법 처리 촉구 기자회견에 참여한 한 참가자는 “하루에 7명이 산업재해 사망사고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지 못하다”라며 “법안이 제정이 되면 많은 청년 노동자들이 살아가고, 퇴근할 수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지금까지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건설업계에 번지는 CEO 자리 기피 현상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처벌이 너무 과도하다, 지금도 늦었다 당장 시행해야 한다는 서로 극명하게 상반된 주장 사이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