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집을 헌집이라 부르지못해 애끓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가 자원 낭비를 줄인다는 목적으로 안전진단 평가기준을 대폭 상향조정했기 때문인데요. 재건축을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인 안전진단 적정성 검사에서 통과기준을 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함에따라 주민들은 “분노를 넘어 내년을 노려보겠다는 체념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표하고 있습니다. 재건축 불가 판정을 받은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주민들의 속사정에 대해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올해 재건축 심사에서 탈락한 고덕주공9단지의 재건축 준비위원장을 맡은 이강성 씨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이 씨는 “작년에 큰 홍수가 났을 땐 무려 240가구에서 심각한 누수현상이 있었고 장마가 날 때마다 누수 피해를 입는 주민들이 태반이다”라며 “보험회사도 접수를 거부하는 마당에 이런 아파트를 재건축하겠다는 우리가 투기세력일리 없지 않느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마찬가지로 올해 안전진단을 통과하지못한 태릉우성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우리 아파트 수돗물은 녹물”이라며 “공용하수관은 오래전 깨졌는데 파손 부위를 찾지도 못하고 있고, 아파트 한동은 약간 기울어진 상태인데 재건축을 못한다니 어이가 없다”라고 토로했습니다.

이처럼 서울의 낡은 아파트에 사는 입주민들은 재건축을 간절히 희망하고 있지만 안전진단 단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있는데요. 앞서 언급했듯 이번정부 들어서 안전진단 평가기준은 대폭 강화됐습니다. 정부는 지난 2018년 안전진단 기준 요건에서 설비 노후도를 기존 30%에서 25%로 낮추고, 구조 안전성을 20%에서 50%로 높였는데요.

업계 전문가 등에 따르면, 이는 서울 내 재건축 연한인 준공 30년을 넘는다 하더라도 붕괴 위험이나 드러나는 부실시공 등이 없는 한 안전진단을 통과하기 매우 어려운 구조라고 합니다. 이에 더해 안전진단 현장조사 확대 등을 담은 지난해 ‘6·17 대책’ 이후 이제껏 크게 까다로워진 적정성 검토를 통과한 아파트는 삼환도봉 단 한 곳 뿐이었죠.

실제로 준공 37년차에 달하는 노원구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태릉우성이 올해 재건축 심사에서 불가 판정을 받으면서 재건축을 희망하는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는데요. 이에 주민들은 정부의 안전진단 적정성 검사 자체를 신뢰하지 못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안전진단은 현지조사, 정밀안전진단, 적정성 검토순 총 세단계로 나눠 진행되는데요. 적정성 검토는 공공기관인 국토안전관리원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맡습니다. 태릉우성아파트 재건축 준비위원 관계자는 “건물 기울기 평가항목에서 E등급이 나왔는데도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적정성 검토 결과에서 C등급으로 상향조정됐다”라며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기술적으로만 판단을 내린거라고는 도무지 믿기 어렵다”라고 전했는데요.

민간 안전진단 업체 조차 정부의 적정성 검사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습니다. 국내 한 안전진단 업체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국토안전관리원이 내린 결론에 대해 우리조차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 상당히 많다”라며 “이들이 내린 결론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재건축이 투기세력 유입을 부추겨 인근의 부동산 값을 요동치게 할 것을 우려해 이를 막기위한 수단으로 안전진단을 악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는데요. 최근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안전진단 요건을 완화해달라는 요구에 ”시장 상황이 안정 상태로 돌아간 것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내놔 정부가 안전진단을 주민의 주거환경을 위해서가 아닌, 정무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여론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상황이 이렇다보니 안전진단 통과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던 아파트 주민들이 속속들이 계획을 수정하고 있는데요. 재건축의 첫 관문인 안전진단 통과를 올해는 통과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 내년 대선 이후에 다시금 도전해 보겠다는 것이죠. 상계동 상계주공3단지, 하계동 하계장미, 풍납동의 풍납미성 등은 일제히 적정성 검토 신청을 보류한 상태인데요.

한 재건축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적정성 검토에서 탈락하면 1차 관문인 예비안전진단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데 첫단계를 통과하는 것만해도 수억원에 달하는 비용이 드는 만큼 아파트 주민들 입장에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상황을 우려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데요. 서울소재의 한 부동산학과 교수는 ”민간주도 공급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재건축이 안전진단이란 벽에 꽉 막혀 있으니 당분간은 공급절벽이 오래 간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지금까지 안전진단에 번번이 탈락해 속상함을 토로하는 서울 내 노후아파트 주민들의 속사정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추후 이들 아파트이 재건축 심사 결과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해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