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시상식 무대에서 배우들이 수상소감을 말할 때면 감독, 작가와 더불어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스타일리스트인데요.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의상은 캐릭터에 성격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이기에 스타일리스트가 작품 완성도에 미치는 영향력도 지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현재는 스타일리스트에 대해,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모르는 이가 없지만, 사실 스타일리스트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용어 자체가 한 사람에 의해 국내에서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정우성, 손예진, 김남주 등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찾는 인물이자 국내 1호 스타일리스트인 김성일에 대해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SBS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김사랑, KBS 드라마 ‘넝쿨째 굴러 온 당신’의 김남주,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손예진 등 수 많은 스타를 아름답게 만들어준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은 어릴 적부터 패션에 관한 관심이 남다른 아이였습니다. 그는 어릴적 순정만화를 읽을 때면 만화 속 주인공들이 입은 의상에 맘이 빼앗겨 옷을 똑같이 따라 그려본다거나, 도화지에 다양한 옷들을 그리고 오려 종이 장난감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그가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의 어머니 영향도 있었습니다. 보통 무더운 여름철 아이들은 반바지에 반팔을 주로 입지만, 그는 판바지에 긴소매 옷을 주로 입었다고 하죠. 지금은 그렇게 입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지만, 그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여름철에 반바지와 긴소매 조합은 상당히 흔치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에 어린 시절의 그가 어머니에게 ‘친구들과 같은 옷차림을 하고 싶다’고 말하자 “굳이 남들하고 왜 똑같아지려고 하니? 이런 옷차림이 차별화되고 더 예쁘단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패션에 일가견 있는 어머니 덕분에 패션에 대한 그의 관심은 학창시절부터 자연스레 이어졌는데요. 중고등학교 시절 소방차라는 가수가 입고 나온 엉덩이는 부풀고, 밑으로 갈수록 좁은 항아리형 바지가 유행하자 문제집을 살 돈으로 소방차스타일의 바지를 산 뒤, 어머니에겐 친구들에게 빌린 문제집을 보여 드리기도 했다고 하죠.

그가 대학교에 진학할 때 즘에 이르러선 그는 의상학과를 가고 싶었으나 집안의 반대로 국문학과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당시는 속상했을지언정 오히려 의상학과를 전공하지 않았기에 좀 더 과감하고 다양한 시도들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패션업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군대를 제대한 뒤, 우연히 벼룩시장신문에서 패션스쿨 광고를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돼 줬습니다. 당시 집안에서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걸 반대하는 걸 알았기에 그는 광고학원에 다닌다는 핑계로 가족들 몰래 패션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요. 이후 미치코런던과 청도어패럴에서 본격적인 일도 도맡게 된 그는 스스로 실력에 부족함을 느끼고 1995년 영국으로의 유학을 감행합니다.   

김성일 스타일리스트는 “원래 6개월 정도 머무를 생각이었는데 2년이나 영국에 있으면서 공부하게 됐다”라며 “당시 하루를 1파운드로 버티며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고된 일정의 연속이었지만 정말 행복하게 공부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후 영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당시 패션업계에서 유명한 김용호 포토그래퍼의 제의를 받고 1997년부터 약 5년간 패션광고기획 및 스타일링 업무를 하게 되는데요. 당시는 상황에 따라 의상을 매치하는 스타일링에 대한 정식 명칭도 없던 때였습니다.

이에 김성일 스타일리스트는 영국에선 이와 같은 업무를 하는 이들을 일컬어 ‘스타일리스트’라고 부르는 것을 차용해 명함에 스타일리스트라고 적기 시작했고 이로써 그가 국내 1호 스타일리스트가 된 것이죠. 그가 국내 스타일리스트 1호로써 처음 활동할 당시만 해도 당시 ‘대체 스타일리스트가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고 하는데요.

20년 가까이 스타일리스트로 일해오면서 그의 손을 거쳐 간 톱스타들은 손가락으로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는 스타일리스트로서 단순히 상황에 맞는 예쁜 옷을 스타일링 해주는 것이 아닌 ‘분위기’를 스타일링하고 싶다고 하는데요.

그는 패션에서 옷이 전부가 아니다는 지론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배우들의 시상식 의뢰가 들어왔을 시, 단순히 드레스 코디를 짜는 것을 넘어 옷자락을 잡아드는 손동작을 비롯해 손을 흔드는 모양새까지 깐깐하게 조언하는 이유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의 열정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일화가 있는데요. 그와 오랜 시간 일해온 배우 김남주의 결혼식 당시 그는 스타일리스트로서 김남주의 결혼 의상 선택을 도왔습니다. 그는 “귀걸이만 멋있으면 완벽하겠다 싶었는데 마땅한 게 없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는데요.

이때 물방울모양의 다이아몬드 귀걸이가 완벽하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고 그는 결국 한쪽 당 3캐럿에 달하는 귀걸이를 만들 수 있는 국내 제조 업체를 찾아가 디자인 시안을 보여준 뒤 ’만들어 주면 김남주를 채운 뒤 다시 반납하겠다‘라고 해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당시 김남주가 착용한 다이아몬드 귀걸이는 3억원대를 호가했다고 하죠.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김남주의 완벽한 결혼식을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판 끝에 결혼식 당일 김남주가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걸고 입장할 수 있게 되자, 그 모습을 보고 그만 그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하는데요. 김성일 스타일리스트는 ”제가 꾸민 드레스랑 귀걸이를 하고 나오는데 그 모습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눈물이 펑펑 나더라“라며 ”주변에서 네가 남주 어머니도 아닌데 왜 이렇게 우냐고 할 정도였다“고 밝혔습니다.

이 밖에 오랜 시간 스타일리스트로서 일하고 있다 보니 종종 잊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는데요. 보통 여배우들의 시상식 의상을 준비할 경우 대개 특정 사이즈의 속옷을 준비해 얼마간의 보정 과정을 거치면 되지만, 모 여배우의 경우 준비해 간 속옷이 너무 작은 탓에 김성일 스타일리스트가 해당 배우의 집으로 가 새로운 속옷을 챙겨다 준 적도 있다고 합니다.

한편, 그는 대중에게 의상을 제안하는 프로그램을 출연하는 경우가 잦은데요. 이와 관련해 그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연예인 누가 입은 옷, 연예인 누가 한 머리 등 연예인이 하는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경우가 있다“라며 ”그것도 좋지만, 그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고자 출연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국내 1호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한 분야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는 그가 20여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정상의 자리에 올라 있는 게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그가 드라마 영화를 통해 어떤 스타일을 선봬 또 다른 유행을 만들어 낼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