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한국 펜싱 남자 대표팀이 9년 만에 ‘세계랭킹 1위’자리를 탈환해 온 국민을 기쁘게 만들었는데요. 이 와중 이번 도쿄 올림픽 단체전에선 금메달, 개인전에선 동메달을 수확한 김정환 선수가 ‘아시아에선 펜싱으론 이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꼽은 사람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국가대표도 운동선수도 아닌 예능프로그램 PD였는데요. 방송국 PD가 어쩌다 국가대표로부터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소리를 듣게 됐는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지난 29일 ‘모르모트PD’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는 권해봄 PD는 본인의 SNS에 김정환 선수와 나눈 대화내용을 공개했는데요. 권 PD는 김정환 선수가 메달을 획득한 것과 관련해 “멀리서 두 손 모아 응원만 하다 축하한다는 연락을 드린다”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에 김정환 선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제 아시아에서 펜싱으로 형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해봄이 밖에 없는 거 알지?”라며 유쾌하게 화답했습니다. 김 선수는 과거 두 사람이 MBC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에서 호흡을 맞췄던 기억을 상기해 메시지를 보낸 것인데요.

2016년 마리텔에 출연했던 김정환 선수는 권 PD와 함께 ‘뺨 때리기’대결을 펼친 바 있습니다. 김 선수는 경기 시작 전 유리한 팔 길이를 자랑하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는데요. 그러나 막상 대결이 시작되자 권 PD는 김 선수보다 팔 길이가 한 뼘가량 짧았음에도 날센 몸놀림을 선보이며 김 선수에게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급기야 김정환 선수의 뒤통수와 뺨을 연이어 가격해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최병철 선수는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도 되겠다”라며 권 PD를 추켜세우기도 했는데요.

올해 도쿄 올림픽에서 김정환 선수가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연이어 메달을 차지하면서 김 선수가 권 PD와 대결한 영상은 역주행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10월경 올라온 영상임에도 해당 영상 댓글 창에는 “금메달리스트를 가뿐하게 꺾는 모습 보러왔다”, “세계0순위 펜싱선수 모르모트”, “이 정도면 피디가 파리올림픽 출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다양한 반응을 보였는데요.

권 PD가 연예인이 아님에도 카메라 앞에 적극 나서 대결을 펼쳤던 이유는 그가 ‘참여형 PD’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모르모트라는 별명을 갖게 된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는데요. 본래 모르모트는 흔히 실험용으로 쓰이는 쥐를 의미하죠.

권 PD는 과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모르모트라는 별명은 마리텔 담당 PD가 지어준 별명인데 프로그램 자체가 콘텐츠를 배워볼 수 있는 실험대상이 있어야 몰입이 잘 되는 프로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대상에 내가 될 줄은 몰랐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마리텔을 연출하는 내내 권 PD는 프로그램 내 모르모트로서 노래, 운동, 춤 등 다양한 모습을 카메라 앞에서 선보이며 프로그램의 재미를 살리는 데 일조했는데요.

권해봄 PD는 원래 카메라 앞에 나서는 걸 즐기는 타입은 아니라고 합니다. 평소 그는 기자회견을 할 때면 손을 벌벌 떨 만큼 무대 공포가 심하다고 하죠. 권 PD는 연출자이자 출연자로서 카메라 앞에 계속해서 서게 되는 것과 관련해 “카메라 앞에서 나오고 싶어 계속 출연한다기보단 방송을 재밌게 살리려는 PD의 고뇌로 봐달라”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그의 첫 일자리가 방송국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중학생 시절 ‘이경규가 간다’라는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큰 감명을 받은 권 PD는 공익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가 되고 싶었다는데요.

그러나 언론고시에 붙을 자신이 없던 그는 방송국에 입사지원서를 내보지도 못하고 백화점에 취직했습니다. 이후에도 좀처럼 PD의 꿈은 사그라지지 않았는데요. 백화점 농산물코너에서 일하고 있을 당시 ‘실패할까 두려워 도전도 해보지 못하고 여기서 쌀을 팔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자 권 PD는 작은 방송사 문이라도 두드려 봐야겠다고 마음먹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SBS Plus에서 예능 PD 인턴으로서 그는 방송국에 입사하게 되는데요. 그때 나이가 25이었습니다. 이후 CJ ENM을 거쳐 MBC 공채로 입사한 뒤 모르모트PD라는 별명으로 대중에게 인지도를 얻게 되는데요. 참여형 PD로서 프로그램 재미를 살리는 데 적극적으로 일조한 끝에 마리텔 시즌2 에서는 그가 처음으로 박진경 PD와 함께 공동 연출을 맡게 됩니다. MBC 입사 후 첫 입봉작이 그의 이름을 대중에 알려준 프로그램이 된 것이죠.

지난해 2월 MBC를 퇴사한 뒤 카카오M으로 이적한 권 PD는 현재 예능대부 이경규와 함께 ‘찐경규’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데요. 포맷을 정해놓지 않고 파일럿 프로그램처럼 매 회차별로 주제를 달리하는 해당 프로는 현재 100여 편을 훌쩍 넘었습니다. ‘찐경규’에서 역시 권PD는 프로그램 제작자임과 동시에 출연자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고 있죠.

그는 PD가 제작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함으로써 얻게 되는 장점에 대해 “PD는 대본이나 구성이 머릿속에 있어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면 다른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부여하기 쉬운 측면이 있다”라며 “예를 들어 김동현 종합격투기 선수 앞에선 겁먹기보단 맞서는 모습으로, 호랑이 선생님 앞에선 주눅이 든 모습 등으로 상대의 캐릭터를 더 재밌게 살리는 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예능PD라는 직업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는 그는 웃음과 더불어 따뜻한 감동을 전하는 예능을 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하는데요. 권 PD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꿈이 있는 게 중요한 것 같다”라며 “요즘 젊은 세대는 꿈을 갖기 힘든 환경이지만 그럼에도 꼭 직업이 아니라 하더라도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조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언론고시에 낙방하게 될 거란 두려움으로 백화점 취직을 택했던 청년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끝에 현재는 어엿한 10년 차 PD가 됐는데요. 그가 현재 제작 중인 프로그램 ‘찐경규’를 통해서 보여줄 다양한 예능적 시도들에도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