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병철 회장이 은인으로 극진히 모셨다는 직원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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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의 대표적인 은인 위대식
한국전쟁 중 이병철 도와
전쟁 후 임원급으로 승진
이병철보다 일찍 세상 떠나

조선일보 / 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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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창업주이자 초대 회장이병철은인으로 모셨다는 인물이 있어 주목된다. 심지어 그는 이병철의 스승이나 지인이 아닌 내부 직원이었다고 한다. 과연 누구일까.

지금의 삼성그룹, CJ그룹, 신세계그룹이 모두 이병철로부터 시작돼 일명 ‘범삼성가’라고도 불리며 현재도 대한민국 재계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병철은 지방 양반가 출신으로, 만석꾼 집안이라 어린 시절 유복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는 일본 와세다대학 부속 전문부 정경과에 입학했으나, 유학 생활 중 건강 악화로 1934년 중퇴하고 국내로 돌아온다.

고향에서 건강을 회복한 뒤 상경해 2년 동안 부친의 송금을 받으며 지냈다고 한다. 이웃들과 골패(도박의 일종)에 빠지기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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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이의 아버지가 된 26세가 이병철의 전환기다. 그는 방문을 열고 달빛에 비친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 보는 순간, 악몽에서 깨어난 듯한 심정을 받았다고. 여러 구상을 하다가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부친에게 지원받은 쌀 300석분의 토지를 기반으로 사업을 일으켰다. 1936년 마산에서 협동정미소 창업을 시작해 운수업에도 진출했다. 1938년에는 지금의 삼성그룹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삼성상회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삼성의 시작은 상회, 즉 무역업이다. 대구 인근에서 수확한 청과물과 포항에서 들여온 수산물 등을 중국과 만주에 수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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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상회는 무역업 외에도 국수 제조업을 했다. 제분기와 제면기를 설치하고 대표 제품인 ‘별표국수’를 출시했다. 당시에는 꽤나 비싼 가격이었으나 대구와 인근 지방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별이 세 개 그려진 별표국수의 상표는 초창기 삼성 로고의 모태가 된다.

1942년에는 조선양조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렇게 잘 나가던 사업에 위기가 찾아온다. 광복 이후 6.25 전쟁이 벌어진 것. 초기에는 전쟁이 금방 끝나겠다고 생각해 서울에 있었다고.

그러나 북한이 서울을 점령하면서 북한군을 피해 다니는 신세가 된다. 은신처에 숨어있던 이병철은 언제 들킬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때 이병철을 도울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운전기사 위대식이다. 그는 이병철의 탈출자금을 마련하는 등 위험한 상황에서도 이병철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MBC ‘영웅시대’

이 때문에 두 사람의 인연은 깊어졌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는 이병철이 위대식을 임원급으로 대했다고. 일명 ‘수석부장(삼성물산 이사)’이다.

위대식은 이병철의 운전기사로 40년 가까이 지냈다. 그러나 그는 이병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병철은 삼성 에버랜드 공원을 창설할 당시 사후에 묻힐 가묘를 설정해뒀다고. 위대식이 자신보다 먼저 사망하자 이병철은 자신의 가묘 옆에 묘지를 쓰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그만큼 위대식은 이병철에게는 각별한 인연이었다. 가족과 같은 수준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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