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삼성가’ 재벌가 장남이자 이재용 사촌형이라 불린 인물

이재용 사촌형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
향년 59세 별세
집안 왜 몰락했나

중앙포토

삼성가(家) 3세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이 별세하면서 그의 집안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이재관은 지난 11일 별세했다. 향년 59세. 사인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고인은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귀국한 뒤 고관절 수술, 우울증 등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관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차남이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작은형이창희 회장아들이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사촌 형으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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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 회장은 삼성가에서 ‘비운의 황태자’로 불린다. 그는 경상남도 의령군 출신으로 보성중학교를 졸업했고,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가쿠슈인대학에 입학, 1964년엔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

귀국 후 본격적으로 이병철이 세운 삼성그룹에 입사해 한국비료 이사, 제일모직 이사, 삼성물산 이사 등을 거쳤다.

이후 일명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하게 됐다. 사카린 밀수 사건은 1966년 5월 24일 삼성그룹 계열사 한국비료 공업이 일본 미쓰이 그룹과 공모해 사카린 2,259포대(약 55톤)를 건설 자재로 꾸며서 들여와 판매하려고 했다가 들통난 사건이다.

훗날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 회장 사이에 밀약이 있었고, 밀수를 통해 거둔 수입을 박 전 대통령의 정치자금으로 쓰는 은밀한 사업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정권의 묵인하에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한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해당 사건 여파로 국회도 뒤집어졌다.

김두한이 정일권 당시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에 분뇨를 뿌린 일이 바로 이 사건 때문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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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은 한국비료 공업과 대구대학을 정부에 헌납하고 2선으로 물러났다. 이 회장의 아들들에게도 화살이 돌아갔다. 이맹희가 밀수를 주도적으로 실행했으나, 법적인 책임은 차남인 이창희 당시 상무가 지게 됐다.

6개월간의 수감생활을 겪은 뒤 나와 1969년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하면서 후계 구도에서 배제됐다.

왕자의 난은 이창희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비리가 있으니 경영에서 물러나게 해달라는 탄원서를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냈다가 되려 “천륜을 저버리는 일”이라며 혼난 사건이다.

이러한 일은 이병철 회장 귀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이 회장은 이창희를 미국으로 보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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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는 자신만의 사업을 미국에서 벌이기 시작한다. 1973년 미국 마그네틱 미디어 사와 손을 잡아 ‘마그네틱 미디어 코리아’를 세워 카세트테이프 제조업을 개시했다. 1977년에는 새한전자를 인수, 1979년 회사를 합쳐 이듬해 새한미디어로 사명을 바꾸게 된다.

1980년대 비디오테이프, 플로피디스크 등 기록매체 관련 사업 중심으로 회사를 키워 SKC와 선경 마그네틱에 버금가는 기록 매체 전문메이커로 키워냈다.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사업은 이창희의 사망으로 제동이 걸리게 된다.

1995년 부인과 장남 이재관이 삼성그룹으로부터 제일합섬을 넘겨받아 새한그룹으로 경영했다. 새한그룹은 한때 자산규모가 재계 순위 27위까지 오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경영 실패로 새한미디어를 포함한 모든 계열사가 매각됐다. 이렇게 새한그룹은 삼성가에서 분가한 CJ, 한솔, 신세계 등 여러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룹으로 남게 된다.

지난 2010년에는 이창희 차남 이재찬이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이번에 장남인 이재관까지 향년 59세 나이로 사망하면서 더욱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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