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진 컴퓨터, 팬택 부채 엄청나
조흥은행, 새한 미디어 타사에 흡수
시대의 흐름 따라가지 못한 메신저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기술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추억의 뒤안길로 간 전국을 강타했던 인기 기업들도 다수 보이는데요.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열풍을 끌고 왔던 다마고치, 버디버디, 싸이월드, 갖고 싶어 했던 스카이폰 등은 이제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 같은 추억의 기업들이 엄청난 인기와 수요가 있었음에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세진 컴퓨터랜드

세진 컴퓨터랜드는 1990년대 3차 산업 혁명 본격화와 함께 등장하였습니다. 창립자인 한상수 대표는 1991년 부산 서면 지하상가에 컴퓨터 매장을 오픈하며 사업을 시작한 뒤 평생 무상 수리와 같은 파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빠르게 성장시켜 나갔습니다. 이에 전국 곳곳에 대형 매장이 있었으며, 1996년에는 전국 57개의 직영매장을 확보하였고, 한 해 동안 10만 대 이상의 컴퓨터를 판매할 정도였죠.

창업 4년 만인 1996년에는 매출액 기준 당시 대기업이었던 삼성전자, 삼보 컴퓨터에 이은 국내 3위까지 올랐습니다. 타사와 달리 크고 깔끔한 매장에, 친절한 직원까지 있었으며, 상시적으로 할인 행사를 실시함과 동시에 정찰제를 실시하여 고객 기만행위를 하지 않아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상당했습니다.

세진 컴퓨터 인수 당시 모습

그렇지만 무리하게 매장을 확대하다 보니 부채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자금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는데요. 군대를 방불케하는 강압적인 직원 교육 및 권위적인 기업 운영 방침으로 인해 직원 불만까지 폭주하는 최고 경영자의 독단적인 경영 방식은 기업을 내부적으로도 붕괴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결국 1997년 말 대우 통신에 인수되었으나, IMF와 함께 대우그룹 자체가 흔들리자 부도를 내고, 파산 선고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시 세진의 자산 규모는 784억 원이었으나 부채는 약 6배에 달하는 4800억 원이었죠.

◎ 팬택(sky)

대한민국 1세대 통신 벤처 기업 중 하나인 팬택은 그 사명보다 sky 폰으로 더 유명한 기업입니다. 박병엽 대표가 1991년 직원 6명과 함께 자본금 4000만 원으로 창업한 이곳은 무선 호출기, 산업용 무전기 등을 자체 개발하면서 내수 및 수출 시장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는데요.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어 남들 다 망했던 IMF 때도 꾸준히 해외 시장을 개척하며 위기를 극복해나갔죠.

이후 2002년에는 현대큐리텔을, 2005년에는 스카이 텔레텍을 인수·합병하며 몸집을 키운 후 국내 최초 33만 화소 카메라 폰, 슬라이드 방식 휴대폰 등을 만들어냈으며, 세계 최초 지문인식 폰도 개발하며 연속 호재를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자금난이 발생하였고, 고급형 브랜들인 스카이의 품질에 대한 혹평이 이어지며 합병의 효과가 미미해졌고, 결국 2006년 팬택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채무가 무려 1조 5000억 원에 달했죠.

이후 2010년 베가, 베가 X, 베가레이서 등 쟁쟁한 스마트폰과 함께 돌아온 팬택은 LG전자를 제치고 스마트폰 점유율 2위에까지 올랐는데요. 자금력이 약하다 보니 단통법 등 정부의 규제에 큰 충격을 받게 되며 2014년 다시 워크아웃을 신청하였습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신제품을 출시하며 반등을 도모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이전과 같은 성공은 보이지 않고 있죠.

◎ 조흥은행

1897년 1월 한성은행으로 출범한 조흥은행은 한국 최초의 민간 상업 은행입니다. 이는 이후 1974년 동일은행과 합병하며 사명을 조흥은행으로 바꾸었고, 1956년 기업 공개를 통해 주식을 상장하며 점차 성장해나갔습니다. 1963년에는 외국환 업무를 개시하였으며, 1989년에는 조흥 리스를 설립하고, 1992년에는 조흥 투자 자문을 인수, 1999년에는 충북 은행과 강원 은행을 합병하며 몸집을 키워나갔죠.

조흥은행 매각 반대 시위

이에 1999년에는 고객 만족 경영 최우수상을, 2002년에는 한국 능률협회 선정 고객 만족 경영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에는 한국 기네스 협회에서 국내 최고 은행, 최고 법인 기업 기록 인정서를 발급해주기도 했죠. 그러나 한보 사태로 인해 우찬목 은행장이 구속되고, 외환 위기로 자산 건전도가 떨어지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후 정부의 결정으로 인해 신한금융 지주로의 매각 및 통합이 이뤄져 현 신한은행으로 다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 새한미디어

새한 미디어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성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 차남 이창희가 1967년에 창립한 회사입니다. 미국 마그네틱 미디어와 제휴하여 마그네틱 미디어 모리아로 시작한 이곳은 이후 새한 전자에 흡수합병되었다가, 1980년 다시 새한미디어로 변경하며 입지를 다져나갔는데요. IMF로 새한 그룹 자체가 해체되자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되었고, 이후 론스타, 골든브리지 컨소시엄 등과 M&A 진행에 실패하며 몰락하였습니다. 무리한 사업 확장과 연달은 투자 실패로 인해 결국 2010년 코스모 화학 컨소시엄과 M&A 본 계약을 체결하며 코스모그룹 계열사에 편입하게 되어 현재는 코스모신소재로 운영 중입니다.

◎ 메신저 서비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메신저는 상당히 많은데요. 그중 가장 유명했던 것들로는 세이클럽, 버디버디, 마이피플을 꼽을 수 있죠. 세이클럽은 1999년 6월 멀티미디어 웹 기반 종합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로 시작한 곳으로 네오위즈가 1997년 자본금 1억 원을 들여 설립한 세계 최초로 웹 기반 채팅 서비스 사이트입니다. 이는 2001년 가을 세계 최초로 캐릭터 상품인 아바타 유료 서비스를 시작하며 붐을 일으켰는데요. 2003년에는 회원 수 2000만 명을 돌파하였고, 매출액은 2001년 캐릭터 서비스 이후 100억 원을 넘기며 지속적으로 상승하였으나 2000년대 후반으로 가며 인기가 빠르게 하락하였습니다.

버디버디는 2000년 1월에 출범한 웹 기반 채팅 프로그램으로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거두었습니다. 2003년 기준 국내 메신저 점유율 19.6%로 2위를 달성하기도 하였으며, 회원 수는 무려 4200만 명에 달했죠. 그렇지만 2008년 위메이드에 인수되어 4년간의 짧은 유지 기간 뒤 2012년 갑자기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소식이 끊겼습니다. 두 메신저의 패인은 확산되어가는 스마트폰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였다는 점인데요. 두 서비스 모두 웹 기반으로 모바일 사용이 활성화되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외면받게 된 것이죠.

다음의 마이피플은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채팅 애플리케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사라진 서비스입니다. 2010년 5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이곳은 2011년 2월 무료 통화 기능 및 무료 영상 기능을 추가하며 가입자 4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빠른 성장을 보였습니다. 스마트폰 및 PC 모두 사용이 가능해 성장 가능성도 보였지만,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되자 회사에서 카카오톡에 집중하기 위해 2015년 서비스를 종료시키면서 한순간에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가파른 성장을 보였던 기업들의 공통적인 패인으로는 점차 빨라지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점, 무리하게 확장을 시도했던 점 등을 꼽을 수 있는데요. 한때 한국을 풍미했던 만큼 서비스 종료 및 몰락에 대중들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죠. 이제는 추억의 아이템이 되어 버린 이들 중 여러분은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