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에 입단
최연소 국제 바둑 기전 우승자
상하이 대첩
결혼 이후 실적 부진, 다시 재기 중

몇 해 전 인공 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바둑 경기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사건입니다. 이와 함께 바둑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었습니다. 이에 전국 곳곳에 기원이 있고, 길거리에서 바둑을 두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던 과거의 위상을 잠시 찾는 듯 했으나 다시 시들해졌죠.

응답하라 1988 최택

그런데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바둑 기사들에 대한 팬층이 두꺼울 정도로 아직도 바둑의 인기가 상당합니다. 이러한 쟁쟁한 중국 바둑 기사들 사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신처럼 인정받는 한국 기사가 있는데요. 주인공은 바로 이창호 기사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박보검이 열연한 최택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었죠. 어떤 인물이기에 신처럼 떠받들여 지는 지 알아보겠습니다.

1975년생 이창호

◎ 11세 나이로 한국 기원 입단

1975년생으로 올해 44세인 이창호는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 바둑을 처음 배운 후 여러 기사들에게 지도를 받으며 성장하였습니다. 전주 출신 바둑 기사인 이정옥 6단은 그에게 1천 판에 달하는 지도 대국을 해주었으며, 전영선 7단은 그를 1년간 직접 지도했죠.

정미화 조훈현 부부

10살이 되던 해에는 당시 한국 최정상 기사였던 조훈현의 내제자로 들어가 2년간 배웠으며, 이후 한국 최연소 2위를 기록하며 1986년 11세의 나이로 입단하였습니다. 입단까지 바둑을 정식적으로 배운 기간은 4년으로 그 당시부터 천재성을 드러냈죠.

좌측 KBS 바둑왕전 당시 대국 모습, 우측 조훈현을 내리 3판 이긴 1991년 제 22기 명인전 대국

◎ 어릴 적부터 두각 드러내며 연승 행진

입단 이후 그는 승승장구하며 한국 최정상급 기사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13세에는 바둑왕전 우승을 따냈으며, 15세 때는 스승인 조훈현과의 번기 대결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한국 최고의 다관왕이 되었죠. 이렇듯 빠르게 성장하여 어린 나이에 한국 바둑의 정점에 서자 일본 기사들이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본의 린하이펑과의 경기에서 승리

이러한 그들의 호기심은 그가 당시 거물급 기사였던 일본의 린하이펑과 조치훈 9단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경외심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일본 기사들을 연이어 이기며 17세에 국제 바둑 기전 우승하며 최연소 우승자 타이틀을 거머쥐었죠. 그는 1994년 당시에만 13관왕을 달성하였으며,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약 15년간을 승률왕을 독식하며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창호, 유창혁과의 8번째 KBS바둑왕 경기에서 우승

◎ 2단 특별 승단

이렇듯 어마어마했던 그는 1996년 6월 유창혁 7단과 함께 한국 바둑 사상 최초로 2단 특별 승단을 하여 9단이 되었습니다. 이후 20대 후반인 2002년까지 국제 대회 결승 무패에 가까운 실적을 냈는데요. 90년대 중국 최강의 기자 마샤오춘 9단에게 ‘이창호 빼고 다 이긴다’라는 속설이 생길 정도였죠. 실제로 그는 전체 전적 32 전 중 26승을 거뒀고, 국제 기전 결승전 4번 모두 전승하였습니다.

1996~1999년까지 그는 국제 기전 20회 중 10회를 우승하였고, 메이저 16회 중 9회에서 우승하여 우승률 56.3%를 기록하였습니다. 이후 1998년에는 메이저 국제 바둑 기전인 삼성화재배, LG 배, 후지쯔배, 동양증권배를 독식하였으나 춘란배 결승에서 조훈현에게 1번 패배하여 아깝게 전관왕 칭호는 따지 못했죠.

2005년 농심 신라면 배 국가대항 연승전 6연패 위업달성

그의 전설적인 신화는 ‘상하이 대첩’으로 불리는 2005년 농심 신라면 배 국가대항 연승전에서 탄생했습니다. 당시 한국 대표로 홀로 남은 상황임에도 중국과 일본 대표 5명을 연달아 이겨 한국 팀의 우승을 이끌어낸 것이죠. 이제 중국 네티즌들은 “우리는 국가 대항전에서 중국이 이기기를 너무나 간절히 원하지만 이창호가 지는 광경은 보고 싶지 않다”라며 그를 지지하기도 하였습니다.

17세의 연구생에게 패배

◎ 이어지는 실적 부진, 재기 중

상하이 대첩 이후 그는 지속해서 저조한 실적을 보였습니다. 2010년에는 제2회 비씨카드배 월드 바둑 챔피언십 64강전에서 17세의 연구생에게 패배하여 탈락하기도 하며, 한국 랭킹 6위로 떨어졌죠. 승률 역시 60% 아래로 하락하였습니다. 이는 입단 이래 최악의 성적이었으나 농심 신라면 배 세계 바둑 최강전에서는 혼자 남아 중국의 류싱, 구리, 창하오를 꺾으며 한국의 8번째 우승을 만들어 내며 저력을 입증하였죠.

같은 해 11세 연하의 이도윤과 화촉을 올린 그는 2013년 랭킹 14위까지 떨어졌다가 박카스배 천원전 예선에서 12연승을 하며 10위권을 재진입하는 등 큰 기복을 보였습니다. 이에 2014년부터는 가정에 집중하며 출전을 감소하여 잠시 활동을 보기 어려웠는데요. 2016년 한국 바둑 리그 정관장팀에 지명받아 다시금 복귀하였고, 2018년에는 진지배 한중 바둑리그 대항전에 출전하여 중신 베이징팀의 인예 한이저우 7단과 퉈자시 9단을 꺾으며 재조명 받았습니다.

2016년 대국 이후 복기 중인 이창호와 창하오

어린 나이부터 두각을 드러내 한국 최정상을 유지해왔던 이창호 기사의 저력은 대단해 보입니다. 그는 무서운 승률과 상대를 압도하는 경기로 한국보다도 중국에서 더 큰 인기를 얻을 정도였는데요. 다시 돌아온 그가 앞으로 또 어떤 행보를 보여 놀라움을 줄지 기대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