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사건들의 중심
익명, 실명의 제보자들
신고 후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한 사람의 제보로 시작되어 전 국민이 들썩였다. / hani

아이돌 멤버의 마약 투여 혐의, 국정 농단 사건 등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건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사건의 핵심적인 실마리를 제공해준 신고자가 있었다는 점이죠. 가끔은 사건의 당사자보다 제보자 신상에 초점이 맞춰지며 말 그대로 화제의 주인공이 되기도 합니다.

고발 후 오히려 더욱 고통받고 있다는 내부고발자들

폭로한 사건의 규모가 클수록 처벌을 받아야 할 이들은 당당하게 사회에 나오고 신고자들은 오히려 마음을 졸이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는데요. 오늘은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목숨 걸고 용기 낸 ‘공익신고자’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 국정 농단 폭로 후 원룸 살이? 노승일
전 K 스포츠 재단 부장 노승일은 최순실의 행적과 K 스포츠 재단에서 대통령 순방 문화 공연을 준비한 일 등을 녹취 파일과 함께 공개하며 국정 농단 사건의 핵심 내부 고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내부 고발로 징계 받으며 경제 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폐허가 된 집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모습

그러다 광주에 ‘돈신과 의리’라는 음식점을 오픈했고 같은 지역의 한 폐가를 매입해 이주를 준비했죠. 하지만 폐가는 보수 중 화재로 소실되어 국민들의 후원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후원금으로 불이 옮겨붙은 옆집 할머니 댁을 지어드렸고 본인은 원룸에 살고 있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죠.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던 식당의 사정도 크게 좋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올해 8월, 음주운전 단속 현장에서 도주하다 붙잡힌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는 “식당 장사가 잘되지 않아 소주 서너 잔을 마시고 차량을 운전했다. 음주운전 단속을 보고 겁이 나 달아났다”라고 이야기했는데요. 의도와 관계없이 경찰은 그를 음주운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 살인 협박은 기본, 버닝썬 신고자 김상교
서울 강남 경찰서와 업소 간 유착 의혹을 제기한 ‘버닝썬 사태’의 최초 제보자 김상교. 그는 뮤직비디오 미술감독 출신으로 광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CEO인데요. 신상 정보는 물론 SNS를 통해 사건 이후의 행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버닝썬 조사에 직접 나서며 관련 인물들을 만나며 사건의 축소와 은폐를 막기 위해 힘쓰고 있죠.

그는 태국인 약물 성폭행 가해자를 잡기 위해 직접 태국 인터폴, 경찰청에 방문하는가 하면 얼마 전 종합 국정감사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했죠. 본인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그동안 가족들까지 신변보호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SNS를 통해 “당신 때문에 마약을 구할 수 없게 되었다”라며 위험한 협박이 가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김용철은 “내 계좌에 삼성 비자금 50억 이상 있다”라며 양심 고백을 했다.

◎ 삼성 흔들고 교육청 감사관으로, 김용철
검사를 역임한 변호사 김용철. 그는 2007년 삼성 법무팀장으로 일하다 삼성의 전방위적인 로비와 비자금에 대해 폭로했습니다. 사건 이후 그는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으나 높은 임대료로 4개월 만에 포기했는데요. 일부는 삼성의 압박이 가해진 것이라는 의견들도 있었습니다. 이후 개인 빵집을 열었으나 장사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교육청 감사관 부임 이후 처음으로 교원에 대한 파면 징계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비참한 생활’의 연속이었으나 현재는 광주시 교육청에서 감사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부임 이후 특수부 검사 출신다운 깔끔한 처리로 광주 교육계가 깨끗해졌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요. 감사관의 봉급은 초임 검사보다도 적은 정도라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 인터뷰를 통해 “삼성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삼성과 관련해서 내 역할은 10년 전에 끝났다.”라며 그저 삼성은 과거이며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며 담담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형식적인 사과 쪽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 복직 후 동료들의 감시까지, 박창진
21년간 대한항공에서 사무장으로 일하며 VIP 고객을 상대했던 박창진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폭로한 제보자입니다. 이후 대한항공 일가의 갑질이 사회적으로 이슈 되었지만 재벌 일가를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가야 했습니다. 5일, 그는 대한항공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 때보다 많은 배상금을 지급받게 되었는데요. 그는 자신의 존엄성이 인정받지 못한 기분이라 밝혔습니다.

사건 이후 산업재해를 인정받으며 1년 6개월간 휴직 후 여전히 대한항공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무장이었던 과거와 달리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되었죠. 이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되었습니다. 그가 공개한 머리에 생긴 종양 사진을 통해 그간의 스트레스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 내에서도 ‘내부고발자’로 동료들의 감시를 받으며 꿋꿋이 승무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youtube @ 스브스뉴스

◎ “그런 짓 왜 했어” 퇴사 선택한 케어 고발자
동물권 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가 무분별하게 동물들을 안락사시킨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한 제보자는 다름 아닌 케어의 한 직원이었습니다. 그는 내부 고발 후 케어의 변화를 바랐지만 업무 복귀 후 돌아온 것은 박 대표의 “그런 짓 왜 했어 XX아” 등의 폭언이었죠. 결국 업무에서 배제당한 후 결국 사직서를 쓰게 되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공익 제보 후 재취업을 막아버린 대구의 한 어린이집

◎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내부고발자들
내부고발자, 법적으로 표현하면 공익신고자들은 대부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신변 보호, 불이익 당할 시 손해의 3배를 보상한다는 등의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존재하지만 범위가 제한적이기 때문인데요. 국민의 건강, 안전, 소비자 이익, 공정 경쟁, 환경, 이에 준하는 공공 이익에 속해야만 적용이 되죠. 가장 흔한 폭행, 밀수, 폭언, 횡령 등은 내부 고발이 이뤄져도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기존 공익 신고 절차에선 이름, 주민등록 번호 등의 인적 사항을 적어야만 신고가 가능했는데요. 2018년 10월부턴 변호사가 대리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 선임 비용이 부담되는 이들은 언론사를 찾아 제보해야 하는데요. 언론사는 공익신고가 가능한 기관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셈입니다. 신분이 노출되면 징계, 해고 등의 보복만이 남게 됩니다. 소송 절차를 진행하더라도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중간에 포기하거나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생기게 되죠.

용기를 내는 이들을 위한 보호법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

신고를 통해 받는 보상금이 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한 대가로 받기엔 크지 않은 금액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는 생계와 미래를 생각해 묵과하게 되죠. 공익신고자들은 말 그대로 공익을 위해 생계, 수입은 물론 심한 경우 목숨을 건 이들입니다. 거대한 상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낸 이들 덕분에 사회에는 작게나마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습니다. 배신자, 고발자라는 인식보단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 조성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