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브랜드 ‘타이거’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부산 신발 산업의 호황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가 엄마에게 선물로 받은 운동화 브랜드를 아시나요? 바로 운동화 브랜드 ‘타이거’입니다. 익숙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해당 브랜드를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요. ‘타이거’는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1980년대에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타이거는 호랑이가 등장해 포효하는 광고로 유명해졌는데요. 그 후로 승승장구하여 국민 신발 브랜드로 성장했지만, 지금은 시중에서 찾아볼 수 없는 브랜드가 되고 말았죠. 운동화 브랜드로 잘 나가던 ‘타이거’가 어떻게 국가대표 브랜드에서 폐업까지 이르게 되었을까요? 지금부터 타이거 운동화의 히스토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국가 대표 신발 브랜드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이 드물었던 80년대에, 타이거는 지금의 나이키나 아디다스처럼 인기 좋은 브랜드였습니다. 대학생과 젊은 층의 선호도가 높았죠.

타이거 운동화는 천 재질에 인조피혁을 덧대어 지금의 스니커즈와 같은 형태를 띠었습니다 특히 검은색과 노란색으로 이루어진 제품이 인기가 많았다고 하는데요. 특유의 천 재질과 착화감은 지금은 느낄 수 없는 느낌이라며 타이거 운동화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수출 실적 1위, 삼화고무의 범표 운동화
타이거 운동화의 처음 이름은 ‘범표 운동화’였습니다. 제조사인 삼화고무는 1976년 ‘타이거’로 상표를 변경했죠.

일제강점기인 1934년 설립된 삼화고무는 부산지역의 신발 산업이 호황을 맞은 70, 80년대 국민적 사랑을 받은 신발 제조사였습니다. 이후 1980년대 수출 실적 1,2위를 다투며 한국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성장하였습니다.

◎1987, 이한열 열사의 신발
1987년 6월 9일 최루탄 피격 당시 이한열 열사가 신었던 운동화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영화 1987에서도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집중적으로 담아냈는데요. 장준환 감독은 열사의 운동화는 30년 전의 역사를 담은 소품으로, 이 운동화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제작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장 감독은 영화 촬영 당시 운동화를 사용하게 위해 직접 복원 작업을 의뢰했다고 하는데요. 80년대 당시에는 잘 나가는 브랜드였지만, 지금은 구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같은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이죠.

◎ 부산 신발 산업 몰락과 함께 역사 속으로
부산의 신발산업은 1960년대부터 저렴한 임금으로 당시 세계적으로 신발 산업을 주도하던 일본과 경쟁을 했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에 납품한 것을 계기로, 신발 산업은 ‘수출산업’으로 인정받으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고, 1970년부터 주문 물량이 폭주하면서 1980년대 황금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나이키, 아디다스 등 해외 브랜드가 국내로 들어오면서 국내 브랜드의 인기가 떨어졌고, 1992년 타이거 운동화를 만들던 삼화고무는 폐업에 이르렀죠.

지금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80년대 운동화 타이거, 우리나라의 뛰어난 신발 제조 기술력과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음을 알 수 있었는데요. 80년대 ‘부산에서 만든 운동화’라고 하면 전 세계가 인정하였듯 우리나라 운동화 산업에 다시 주목받는 순간이 왔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