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나 ‘삼성전자’라는 말을 들으면 자동으로 이건희 회장이나 이재용 부회장의 얼굴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이들 오너 일가만이 오늘날의 삼성전자를 만든 주인공은 아니죠. 평범한 사원, 연구원으로 입사해 삼성전자의 성장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임원이 된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오늘은 그중 가장 대표격인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2회장·4부회장 체제


“삼성전자 회장이 이건희가 아니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분명 계실 겁니다. 사실 삼성 전자 사업부는 지난해 말 김기남 대표이사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2회장 4부회장 체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과 오늘의 주인공 권오현 회장이 모두 회장 직함을 달고 있으며, 부회장에는 이재용·윤부근·신종균·김기남 부회장이 임명된 상태죠.

연구원 출신의 삼성전자 회장


그렇다면 이건희 회장과 나란히 삼성전자 회장직에 이름을 올린 권오현 회장은 어떤 사람일까요? 1952년생인 그는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에서 전기공학 석사를,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공과 대학원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입니다. 이후 한국 전자 통신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그는 자리를 옮겨 1985년, 미국 삼성 반도체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입사하죠.

4메가 D 램을 개발해 삼성그룹 기술대상을 수상하는 등 입사 직후부터 두각을 나타낸 권 회장은 승진도 빨랐는데요. 입사 3년 만인 1988년 4메가 D 램 개발팀장으로 승진한 그는 시스템 LSI 상무, 반도체 총괄 사장, DS(디바이스 솔루션)총괄 사장을 역임하고 대표이사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선임되기에 이르렀죠.

계속 삼성전자에서 활약할 것으로 보였던 권 회장은 그러나 2017년 돌연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힙니다. IT 산업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고, 후배 경영진이 나서 경영을 쇄신할 때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그가 내놓은 사퇴 이유였죠. 하지만 사퇴 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17년 11월, 삼성은 후진 양성과 경영 자문을 위해 권 회장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자리에 앉힙니다. 이어 권 회장은 2018년 3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취임했죠.

반도체의 신화적 존재


평범한 연구원으로 입사해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회장직에 오르기까지 권오현 회장은 과연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준 걸까요? 삼성전자가 반도체 신화를 이루는 동안 권오현 회장이 혁혁한 공을 세웠기에 이런 빠른 승진이 가능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반도체를 처음 사업화하던 단계부터 참여했을 뿐 아니라, 결단력 있는 시설투자를 통해 2017년 삼성전자 역대 최대의 실적을 내는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죠.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수감되어 총수 자리가 공백이었던 시기, 권오현 회장은 그룹의 대표 역할도 훌륭히 해냅니다. 문 대통령의 미국 순방길에 삼성그룹의 대표 자격으로 동행했고,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진행한 ‘호프미팅’ 때도 권 회장이 대표로 참석했죠. 이재용 부회장이 복귀한 뒤인 2018년 4월 중구에서 열린 비즈니스 세미나에도 이 부회장이 아닌 권오현 대표가 초청받은 바 있습니다.

전문 경영인 연봉킹


권오현 회장은 기업 오너 일가가 아닌 전문 경영인들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해 삼성전자로부터 70억여 원을 받은 그는 2015년부터 4년째 전문 경영인 연봉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죠.

삼성전자가 공시한 2018년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권오현 회장은 12개월치 급여로 총 12억 4900만 원, 상여금으로 56억 6200만 원, 기타 근로 소득으로 1억 2300만 원을 받았습니다. 총 연봉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상여금은 종합기술원 회장으로서 기술과 경영 전반에 기여한 점을 감안한 금액이라네요.

권오현 회장은 <초격차>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저서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격의 차이를 만드는 원칙을 리더와 조직, 전략 그리고 인재로 나누어 짚어내고 있는데요. SK 하이닉스와도 1년 이상 차이 난다는 삼성 반도체의 ‘초격차’를 이룩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재’는 권오현 회장이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