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디지털 성범죄. N번방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 한 번 전국 각지에서 디지털 성범죄자가 무더기로 검거되었습니다. 특히나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하여 개인 SNS에 올린 타인의 사진을 함부로 음란물에 합성하는 등 도를 넘어서는 범죄 행위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렇게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되어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위해 온라인에서 그들의 ‘잊혀질 권리’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 의사만큼 사람 살리는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개인 공간으로서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특히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높은 사용률을 보이고 있죠. 이렇게 개인 정보를 노출할 수 있는 플랫폼이 떠오르면서 타인의 정보를 도용하거나, 민감한 사생활들을 유출하는 범죄들도 함께 등장했는데요. 디지털 장의사는 온라인에서 떠돌아다니는 피해자들의 온갖 디지털 자료를 삭제하여 유출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돕는 일을 하는 직업입니다.

디지털 자료와 기록들을 깨끗이 처리한다는 의미로 ‘디지털 세탁인’, ‘온라인 평판 관리사’라고도 불리는데요. 이 직업은 미국에서 처음 탄생했습니다. 디지털 장의사라는 명칭 또한 미국에서 붙여진 이름인데요. 초창기 고인들의 인터넷 속 흔적들과 유산을 삭제하는 일들을 주로 했기에 장의사라는 명칭으로 불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산타크루즈컴퍼니’가 디지털 상조회사로 첫발을 떼었는데요.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1인 상조회사로 활동하는 디지털 장의사도 많다고 합니다. 수입은 처리해야 할 자료들의 양과 난이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데요. 디지털 상조회사 청년컴퍼니 김범수 대표에 따르면 “온라인 삭제 처리 비용은 건당 5만 원에서 월 200만 원의 정기 결제까지 다양하다”며 “평균 월 3천만 원의 매출을 낸다”고 말했습니다.

 

디지털 장의사들은 컴퓨터로 모든 작업을 처리하기 때문에 효율적이고 빠른 작업 방식을 업체 경쟁력으로 삼는데요. 보통 자체 제작한 검색 프로그램이나 툴을 활용한다고 합니다. 의뢰인이 제시한 키워드를 검색해서 걸리는 것들을 모조리 리스트업한 후 요청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주 업무라고 하네요. 컴퓨터에 능숙한 분들이 대부분이기에 업무적으로 아주 어려운 것은 없지만 악플 삭제부터 디지털 성착취물 삭제까지 의뢰 건이 다양해 정신적 피로감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온라인 범죄가 증가하면서 디지털 장의사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2020년 유망직종으로 선정되면서 디지털 장의사로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 역시 많아졌는데요. 특히 여성들의 디지털 장의사 취업 준비 사례가 많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1인 상조회사로 활동하는 디지털 장의사도 많기 때문에 초봉은 천차만별이지만 평균 2400~2800만 원 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업무 처리 능력에 따라 상승 폭이 크다고 하네요.

디지털 장의사가 되기 위해선 우선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업무 처리는 컴퓨터로 작업하기 때문이죠. 또한 놓치는 부분 없이 의뢰받은 건을 처리하려면 꼼꼼하고 세심해야 합니다. 2017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주관하여 디지털 장의사 1급 자격증이 신설되었는데요. 필수는 아니지만 취득하면 디지털 상조회사로 취업할 때 약간의 가산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어느 정도의 법률 지식과 윤리 의식도 업무 처리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이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N번방 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 국민을 경악하게 만든 이 끔찍한 사건은 아직도 진행형이죠. N번방의 주요 가해자인 ‘박사’를 추적했다고 밝혔던 디지털 상조회사 ‘이지컴즈’의 박형진 대표는 오히려 N번방 세력과 결탁하여 다수의 아동 성착취물을 보유 및 유포한 정황이 알려져 큰 충격을 안기기도 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엄청난 거액을 제시하며 N번방 활동 정황을 지워달라고 요청했던 가해자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얼마 전 tvN 유퀴즈온더블럭에 출연한 국내 최초 디지털 장의사 김호진 산타크루즈컴퍼니 대표는 “대중에 공개된 N번방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이 건당 1억을 제시하며 삭제를 의뢰했다.”고 말해 두 MC를 놀라게 했습니다. 하지만 범죄의 심각성과 윤리적 사명감으로 거절했다고 밝혔죠.

잊혀질 권리를 지켜주며 극단적 선택까지 고려했던 많은 피해자들을 살리는 데에 디지털 장의사가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장의사와 범죄자는 한 끗 차이라는 지적을 하는 입장도 있죠. 그렇기 때문에 직업적 사명감과 윤리 의식은 디지털 장의사로서 필수 요건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망직종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만큼 업계를 규제하고 관리할 법적 제도 역시 마련된다면 좋을 것 같네요. 의뢰인의 부정적 데이터가 0이 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김호진 대표의 말처럼 개인의 사생활 유출과 악플 등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부정적 데이터들이 0이 될 때까지 디지털 장의사들의 활약을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