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한 주민센터에서 대부분의 직원이 정시 퇴근을 했지만 모든 직원이 매달 특근 식비로 14~16만 원가량을 지급받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일 정도 특근을 해야만 나오는 수당이기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챙겨주기 식’ 꼼수를 통해 이런 상황이 만연했죠.

역학조사관은 감염병을 쫓는 형사로도 비유된다. / hani

일명 ‘꿀 직업’,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무원들의 이러한 행태는 자주 비판받고 있는데요. 노동 없이 대가만을 탐하는 이들과 달리, 최근 들어 ‘극한 직업’으로 불리며 24시간이 모자란 공무원 직렬이 있습니다. 바로 역학조사관입니다.

역학조사관은 감염병의 원인과 특성을 찾아내 감염병 유행을 차단하는 방법을 밝히는 역학조사를 진행하는 국가 지방 공무원입니다. 이들은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해 접촉자 규모, 격리 대상자까지 판단하는데요. 동선 조사를 위해 확진자의 카드 결제 내역은 물론 일상 속 CCTV, 휴대전화 GPS까지 추적하고 있습니다.

CCTV, 스마트폰으로 동선을 추적하는 역학조사관들,

보통 역학조사관들의 업무에 대해 확진자의 동선 조사 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죠. 특정 질병의 원인, 확진자의 상황, 전파 경로, 추가 유행 등을 의과학과 통계학을 토대로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질병 유행을 해결하고 예방하는 것이 이들의 주된 업무입니다.

응시 요건은 전문 임기제 가급과 나급으로 구분되는데요. 전문 임기제 가급의 경우, 의사 면허증 소지 후 관련 분야 6년 이상 연구 또는 근무 경력자여야 합니다. 전문 임기제 나급은 의사 면허증 소지 후 관련 분야 2년 이상 연구 또는 근무 경력자여야 하죠. 나급의 학위 요건은 임용예정 직무 분야와 관련된 박사학위를 취득하거나 석사학위 취득 후 2년 이상 해당 분야의 경력이 있어야 합니다.

영국 BBC 뉴스 코리아판이 지난 29일 유튜브에 게재한 ‘코로나를 쫓는 사람들’ 영상. 경기도 역학조사관 김범수 씨와 김재현 씨. / BBC KOREA

역학조사관들은 감염병이 창궐하지 않은 비수기 때라면 업무에 큰 문제가 없지만 요즘과 같은 상황에선 ‘극한 업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최근 BBC에서 공개한 역학조사관 다큐에선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며 겪는 다양한 갈등 상황이 공개되었는데요. 자가 격리 판정에 저항하는 이들이 소송, 해코지 협박을 늘어놓는 것은 기본, 전화로 이름이나 정보를 물었을 때 대다수가 거짓으로 답해 곤욕을 겪었습니다.

심지어는 역학조사관들이 무릎을 꿇고 이해해달라고 이야기해본 적도 있다는데요. 그럼에도 거짓으로 응수하는 이들에겐 ‘2년 이하의 징역’,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언급하고 나서야 정확한 정보를 들을 수 있습니다. 현직 역학조사관들은 거짓을 밝히기 위해 추궁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며 이 과정에서 밝혀지지 않은 감염 경로로 ‘깜깜이 감염’이 일어나진 않을지 우려를 드러냈습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 KBS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각 시도에는 두 명 이상의 역학조사관을 배치해야 하며 그중 한 명은 의사여야 합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 때부터 끊임없이 ‘전문’ 역학조사관의 수가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죠. 국내 역학조사관 수는 130여 명. 질병 관리 본부에서 70여 명, 광역시도 등 지자체에서 50여 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일반 의사를 역학조사관으로 채용하는 것이 이상적이나, 대부분이 공중보건 의사와 역학조사관 교육을 받은 공무원으로 배치하고 있습니다. 의사가 아닌 대체 교육을 수료한 공무원들이 역학조사관 업무를 대체할 수 없냐는 질문에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NO’라고 답합니다. 사례 분류를 비롯한 역학조사관들의 업무는 감염병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환자의 임상증상을 파악할 수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죠.

코로나19로 대구에 파견됐던 공중보건의들.

전문 역학조사관 채용이 어려운 건 다름 아닌 재정 때문입니다. 일부 자치단체를 제외한 전국의 상당수 기초단체는 열악한 재정 여건상 신규 인력 1명을 채용하면 총액 인건비 제도에 걸려 기존 공무원을 줄여야 하죠.

국비 지원이 없는 데다 총액 인건비, 정원 제한까지 걸려있는 상황이다 보니 전문 임기제 역학조사관을 뽑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진료과목별 의사 평균 연봉 금액 / dailymedi

사실 의사들이 역학조사관에 지원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낮은 연봉 때문입니다. 질병관리본부가 게시한 전문 임기제 공무원(감염병 역학조사) 채용 공고에 따르면 전문 임기제 가급의 2020년 연봉 하한액은 6,106만 원. 나급의 연봉 상한액은 7,591만 원이며 하한액은 5,058만 원이었습니다. 의사들의 평균 연봉 살펴보았는데요. 외과의사가 1억 2,307만 원으로 1위였으며 피부과 1억 1,317만 원, 내과 1억 1,007만 원 순이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의사 면허를 취득하더라도 굳이 ‘전문 역학조사관’에 지원할 이유는 없는 것이죠. 인사혁신처에서는 코로나19 종식까지 한시적으로 역학조사관을 원활하게 충원할 수 있도록 지침을 내렸는데요. 현재 연봉 하한액의 150%까지만 자율적으로 책정 가능한 연봉 수준을 200%까지 책정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이외에도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초과 근무가 불가피한 경우, 한시적으로 초과근무 한도를 확대해 보상을 강화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의사 출신 역학조사관이 부족한 건 계약 조건 역시 한몫을 합니다. 이들의 계약기간은 2년에 불과하고 근무 실적이 우수할 경우 연장하는 방식인데요. 신분 안정이 되지 않은 채 의사 면허와 몇 년의 경력까지 요하니 인재 영입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죠. 전문 임기제 공무원들의 급여는 연봉 하한액만 있어 급여 부분에선 비교적 자유로우나 승진이 어렵습니다.

전문가들은 10년이 지나도 역학조사관 신분으로 일반 공무원에게 지휘를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는데요. 그 결과 대부분 감염 내과 전공자는 모두 대학에 있고 질병관리본부에도 남아있는 인력이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급여, 처우, 승진 등과 관련한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 ‘전문’ 역학조사관 충원은 제2의 코로나, 메르스 사태에서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