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음식을 놓고도 ‘어떻게 먹는 게 제대로냐’하는 논쟁이 자주 일어납니다. 한국인들은 탕수육 찍먹, 부먹 논쟁을 거듭한 끝에 찍먹파와 부먹파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는 ‘깔먹’까지 생각해냈죠.

초밥을 먹을 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밥알이 흩어지지 않도록 손으로 집어먹어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체온이 초밥의 맛을 달라지게 할 수 있으니 꼭 젓가락을 사용해야 한다는 이들도 있죠. 기름기 적은 흰 살 생선부터 시작해 기름진 붉은 생선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정석파, 뭐든지 제일 맛있는 걸 가장 먼저 먹어야 만족감이 높다는 기분파도 있습니다. 오늘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한마디로 환골탈태했다는 한국의 초밥 문화에 대해 알아볼까 하는데요. 이건희 회장이 선호하는 초밥 스타일은 무엇인지,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2.5류 스시만 있던 호텔 일식당


지금으로부터 15여 년 전, 그러니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식 정통 스시를 맛볼 수 있는 국내 식당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식문화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호텔 일식당에서도 회에 초장을 내고, 마끼에 날치알과 작게 썬 김치를 올리는 등 지금은 동네 횟집에서 맛볼 수 있는 수준의 음식을 선보이는 경우가 허다했죠. 어느 날 신라호텔 일식당을 방문한 이건희 회장은 이런 모습에 실망해 “이 초밥은 2.5류다!”라며 화를 냈다는데요.

오랜 기간 일본에서 유학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 이건희 회장은 일본식 정통 스시에 익숙했습니다. 일본 마트에서 파는 초밥만 사 먹어도 맛있는데, 재벌 2세 유학생이 먹은 초밥이라면 그 수준이 남달랐겠죠. 이후 신라호텔 일식당은 이 회장의 유학시절 단골집인 긴자의 한 스시집과 기술 제휴를 맺고 대대적인 변신을 시작합니다.

6개월 기다려야 먹는 스시


신라호텔과 제휴를 맺었다는 일본의 스시집은 도쿄 긴자에 위치한 ‘기요다 스시’입니다. 기요다 스시는 좌석이 8개밖에 되지 않는 작은 식당이지만 일본 황실의 출장 만찬을 전담하고, 남들은 모두 받고 싶어 안달인 미쉐린 가이드의 별을 거부할 정도로 명성이 높습니다. 물론 가격도 그 명성에 걸맞게 높죠. 기요다에서 스시를 맛보려면 최소 3만 5천 엔(한화 약 35만 원), 배부르게 먹자면 10만 엔(한화 약 100만 원) 정도를 지불해야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6개월 이상 예약이 밀려있을 만큼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기요다 스시의 테이블에는 간장 통 대신 소금 통 놓여 있습니다.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 향이 강한 간장 대신 소금을 초밥에 찍어 먹는 손님들이 많기 때문이죠. 그만큼 기요다에서 사용하는 재료들은 남다릅니다. 하루에 2천 톤 이상의 해산물이 거래된다는 츠키지 시장에서 가장 좋은 물건들은 기요다 스시로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모리타 셰프의 아리아께


신라호텔은 기요다 스시와 기술 제휴를 맺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요다의 요리사를 스카우트합니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 신라호텔 일식당 ‘아리아께’를 총괄하고 있는 모리타 셰프는 기요다 스시 기무라 셰프의 제자인데요. 기요다는 자녀가 아닌 당대 최고의 스시 장인에게 가게의 셰프 자리를 물려주는 전통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모리타 셰프는 현재 3대째를 맡고 있는 기무라 셰프가 자신의 뒤를 이을 4대 장인으로 낙점해 화제가 된 바 있죠.

처음 한국에 왔을 무렵, 쫄깃하고 강한 초밥 맛에 익숙했던 한국 손님들이 기요다 식의 부드럽고 섬세한 초밥을 인정해 주지 않아 모리타 셰프는 마음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고심하던 그는 초밥에 쓰이는 해산물과 채소의 성장과정을 셰프들이 모두 꿰고 있을 정도로 재료를 중시하는 기요다의 전통은 그래도 가져오면서도, 숙성기간을 줄이고 쫄깃한 식감을 살려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죠. 밥 위에 생선을 얹고 마지막에 주먹을 꽉 쥐어 내는, 살짝 뾰족하게 높은 모양의 스시는 모리타 셰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아리아께를 찾는 고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네요.

상향 평준화된 한국의 초밥집


특급호텔에 있는 국내 최고의 일식당인 만큼 아리아께의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비교적 낮은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는 점심에도 스시 코스의 가격은 16만 원부터 시작하죠. 하지만 실망하기는 이릅니다. 최근에는 호텔 일식당이 아닌 미들급 스시집의 수준도 꽤 높아졌으니까요. 무조건 생선만 길고 크게 얹어주면 최고였던 시절과 달리 셰프의 취향에 따른 다양한 숙성도, 제철 재료의 훌륭한 베리에이션을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죠.

일본 유학 경험이 있는 이건희 회장의 말 한마디로 신라호텔의 스시 스타일이 달라지고, 그로부터 시작된 변화의 물결이 한국인들의 입맛을, 그리고 중간급 스시집들의 조리법을 바꿔놓았습니다. 2천 년대 초반과 비교해 일본과의 식문화 교류가 훨씬 활발해진 지금, 아리아께를 비롯한 한국 초밥이 또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지 앞으로가 더욱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