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대생 꿈꾸다 간호학과 중퇴
MBC 공채로 데뷔해 ‘국민 엄마’까지
돌연 방송계에서 잠적해 비난받기도
사채까지 손대야 했던 사업의 정체는?

배우 이순재의 대본 노트, 대본을 읽고 있는 김해숙

누구에게나 적성에 맞는 일이 있습니다. 실제로 여러 직장인이 퇴사를 택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죠.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그 길을 노력만으로 걸어오기란 정신적으로 절대 쉽지 않은데요. 40년째 연기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한 중견 여배우는 과거 다른 부업에 호기롭게 도전했다 어마어마한 경제적 손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아주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연기’가 본인의 천직임을 깨달아 명품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데요. 과연, 누구일까요?

고등학생 시절부터 데뷔 이후 김해숙의 모습.

◎ 음대생 꿈꾸다 간호학과, 연예계 데뷔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배우 김해숙입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아래 무남독녀로 자라왔는데요. 김해숙은 어린 시절 피아노, 합창 등 음악을 위주로 교육한 어머니 덕분에 성악가,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음대 진학에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손가락이 짧다는 이유로 피아노를 포기했고 음악이 아닌 간호대학 입학을 준비했죠. 실제로 김해숙은 경희대 간호학과 중퇴라는 의외의 학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러다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우연히 본 오디션을 계기로 MBC 공채 7기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녀의 첫 작품은 이덕화, 임예진 주연의 <성난 능금>입니다. 비록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출중한 연기력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죠. 데뷔 후 3년간 그녀는 행인, 수감자, 가정부 등 각종 단역을 넘나들며 내공을 쌓았는데요. 빠지지 않고 거의 매해 연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40대에 접어들며 각종 ‘엄마’역할을 섭렵했죠. 그녀가 그려내는 모성애, 엄마 연기로 국민 엄마라는 칭호까지 얻으며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24살 결혼, 돌연 잠적을 택한 진짜 이유

김해숙은 데뷔 후 3여 년이 지난 24세에 남편을 만나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그녀가 빨리 따뜻한 가정을 이루길 바랐던 홀어머니의 뜻도 있었습니다. 김해숙은 “아마 주부 탤런트 1호가 내가 아닐까 싶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죠. 안타깝지만 현재 그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과 사별한 상태입니다.

한편, 과거 그녀는 한동안 방송 활동을 멈추고 잠적한 일이 있는데요. 첫째 딸 출산 이후 다음 드라마 일정이 잡힌 상태에서 둘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제2의 전성기가 코앞에 다가온 상태에서 드라마 국장, 당시 프로듀서에게 거짓말을 했는데요. 임신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매일 복대로 배를 감고 다녔지만 감출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잠적하게 된 것입니다. 김해숙은 한 인터뷰에서 잠적의 진짜 이유를 밝히며 “이후 방송국에서 소문이 안 좋았다”라고 회상했는데요. 둘째 출산 이후 단역부터 시작하려던 김해숙은 유인촌과 함께 출연한 드라마 <백년손님>에 주연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 뷔페 사업 도전, “사장님 소리 좋았다”

방송 활동을 너무 어린 나이부터 시작해온 탓일까요? 30대 중반의 김해숙은 확고한 배우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자연스레 다른 사업 쪽으로 눈을 돌렸고 돌잔치를 열 정도로 큰 규모의 뷔페식당을 시작했죠. 프랜차이즈 매장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손님이 있었고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너무 듣기 좋았다고 했는데요. 그녀는 눈앞에 보이는 돈, 사장님이라는 호칭에 신분이 상승된 기분을 느꼈다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 사채까지, 빚 독촉 전화 시달렸던 40대

식당은 하루 종일 돈 계산하는 꿈을 꾸는 것은 물론, 앉으나 서나 손님을 생각하던 그녀에게 금방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손님은 점차 줄었고 임대료가 밀리면서 빚이 늘기 시작했죠. 바로 사업을 접었어야 했지만 ‘잘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에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 썼습니다. 결국에는 사채에까지 손을 댔죠. 깊은 암흑에 빠져 김해숙은 본업인 연기까지 중단하고 사업에 올인했지만 손님과 싸우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실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무방비 도시>, <박쥐>에선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캐릭터를 연기해 화제였다.

이때를 계기로 사업을 포기했고 집 2채를 포함한 전 재산을 날렸습니다. 화려한 연예계 생활을 하던 그녀는 어느새 전철비, 1,500원 대의 방송국 식대를 걱정하며 동전을 세야 했죠. 빚 독촉 전화 때문에 집에 전화선을 모두 뽑기도 했는데요. 이후 5년간 전화벨 노이로제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사별한 남편을 대신해야 했던 그녀는 빚을 갚기 위해 지방 행사는 물론 각종 행사, 방송 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이후 “내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에 차 안에서 하염없이 울기도 했다.”라며 담담히 당시를 회상해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죠.

◎ 국민 엄마, 이번엔 유연석 엄마로 열연 중

사업 실패로 인해 빚을 진 금액이 막대하진 않았지만 암흑을 맛본 뒤로 그녀는 연기에 대한 열정을 더욱 태울 수 있었습니다. 각종 엄마 역할을 맡으며 ‘국민 엄마’가 되었지만 현실 속 김해숙은 스스로를 50점짜리 엄마라고 표현했는데요.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워킹맘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했던 터라 미안한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는 그녀였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워킹맘들이 큰 부담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며 자녀 입장에선 독립심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 성동일, 김성균, 예지원, 오윤아는 김해숙의 자녀들로 깜짝 등장했다.

같은 엄마라도 충분히 다른 색깔을 연기할 수 있어 이 세상 모든 엄마 역할을 하는 것이 꿈이라는 김해숙. 2019년에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박선자 역으로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 드라마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그녀는 최근 또 한 번 엄마 역할을 맡아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 배우 유연석과 성동일을 아들로 둔 정로사로 열연하고 있죠. 역경을 뚫고 천직을 찾은 배우 김해숙이 앞으로 그려낼 또 다른 ‘엄마’ 연기가 더욱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