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잡지 “키노”기자로 영화계 발 들여
영화 홍보와 기획, 마케팅과 제작까지…
오빠와 남편이 영화감독 ‘영화인 가족’
아시아 여성 제작자 최초 오스카 작품상 수상

2020년 1월과 2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이슈는 ‘기생충’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생충은 세계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며, 다른 영화제에서의 수상 여부가 관심을 받았는데요. 이후 열린 오스카 시상식에서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기생충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거머쥐며 국내 영화계의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순간, 봉준호 감독과 함께한 사람이 있는데요. 그 주인공, 곽신애 대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영화잡지 “키노”에 입사한 국문과 졸업생

부산에서 태어난 곽신애 대표는 영화광인 오빠와 다르게 글을 좋아했었습니다. 그녀는 동아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진학하여 자연스럽게 소설가, 드라마 작가의 꿈을 꾸게 되었죠. 1991년엔 서울의 한 출판대행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영화 운동을 하던 선배들을 만났고, 함께 드라마 외주 프로덕션으로 이직까지 하는데요.

그곳에서 우연하게 영화 전문 월간지 ‘키노'(KINO)의 창간 멤버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곽신애 대표를 영화 산업으로 이끌어 준 것이죠. 그렇게 그녀는 2년간 영화 전문 월간지 창간 준비에 몰두했습니다. 긴 준비 끝에 1995년 키노가 창간되었고, 2년 동안 한국 영화 산업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비평을 시도하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총 4년간 키노의 기자로 활동합니다.

◎ 영화산업에서 잔뼈가 굵어지다

곽신애 대표는 취재 활동을 하며 만난 정지우 감독과 연인으로 발전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은 1997년엔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죠. 비슷한 시기에 오빠인 곽경택 감독도 단편영화를 찍기 시작했는데요. 그녀는 영화 기자로서의 순수성을 잃는다는 생각이 들어, 결혼과 동시에 키노를 퇴사합니다.

그녀는 퇴사 이후, 보다필름, LJ 필름, 신씨네, 프라임엔터테인먼트에서 영화 기획과 마케팅을 담당했었습니다. 당시에도 현재와 같이 영화 진행에 관여하고, 캐스팅, 투자사 미팅, 홍보 등 다양한 업무를 진행했죠. 제작사와 만나며 어떤 영화를 기획할지, 어떤 영화의 판권을 살지도 정하는 일이 그녀의 업무였습니다. 그렇게 곽신애 대표는 영화 산업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합니다.

◎ 우연치 않게 들어선 제작자의 길

2010년, 곽신애 대표는 ‘바른손’ 영화사업부 본부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 바른손 필름 대표이사를 거쳐, 2015년부터는 바른손 E&A의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죠. 자연스럽게 제작자로서도 활동 중인데요. 사수였던 프로듀서들이 독립을 위해 차례로 퇴사하자, 회사 측에서 그녀에게 제작자의 자리를 제안했습니다. 제작자로서의 인생이 시작된 순간이죠.

2015년 봉준호 감독은 과거 ‘마더’ 영화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던 바른손에 기생충 각본을 보냈습니다. 당시 ‘옥자’를 제작했던 서우식 대표가 퇴사를 하면서 곽신애 대표를 소개해주었고, 그렇게 그녀는 처음으로 봉준호 감독과 연이 닿게 되었습니다. ‘가려진 시간’을 처음으로 제작한 후, 두 번째 작품인 만큼 그녀는 큰 긴장과 우려로 기생충을 제작했었습니다.

◎ 두 번째 제작 영화가 기생충

봉준호 감독이 프로듀서 리스트를 엑셀 파일로 받아보는 건 처음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곽신애 대표는 철두철미했습니다. 그녀는 처음부터 기생충의 가능성을 엿봤는데요. 전 세계에서 상영될 작품이라는 판단이 들어, 최고 수준의 프로덕션을 준비하길 원했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곽신애 대표는 투자사, 배급사 CJ의 직원들과 끝없는 회의를 통해 의견을 맞춰나갔습니다. 그 덕에 파격적인 영화 마케팅을 선보일 수 있었죠. 또한 50~60회차로 예상되었던 촬영 스케줄을 77회차까지 확보하여, ‘감독의 기량을 만발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 주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곽신애 대표는 4K 촬영, 애트모스 녹음, 정교한 세트 등 프로덕션에 대하여 최대한의 투자를 이끌어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10년의 마케팅 경험을 녹여내어 CJ 마케팅팀, 홍보사 엔드크레딧과 함께 눈을 가린 화제의 포스터를 제작했습니다. 이후, 해외 영화제 수상 자리에 모두 참석하며 배우들과 팀원들을 케어하며 긴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그녀를 “집안의 큰엄마, 이모”에 비유하며 그녀의 따뜻한 친절함에 대한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곽신애 대표는 91년 역사의 오스카 시상식에서 최초의 아시아 여성 영화 제작자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이 덕분인지 첫 제작 작품의 흥행 실패에도 그녀를 제작자로 믿어준 바른손 E&E의 주가는 연이은 강세를 보이고 있죠. 앞으로도 곽신애 대표가 감독과 작품의 매력을 살려주는 영화를 제작해, 기생충의 역사를 반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