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남자’보고 탈북 결심?
용돈 벌기 위해 방송 출연 시작
자신을 향한 악플에 많이 울기도···

이제 미디어에서 북한이탈주민의 모습을 보기 쉬워졌습니다. 아무래도 한국과 다른 생활을 살았으니, 그들의 이야기는 매번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최근엔 북한을 소재로 한 드라마, 영화도 인기를 끌면서 북한이탈주민을 향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한국에 온 그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2015년 한국으로 온 방송인 겸 유튜버 강나라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 “꽃보다 남자” 보면서 꿈꾸게 된 한국행

강나라 씨는 함경북도 청진에 살고 있었습니다. 청진 예고와 청진 예대에서 성악을 전공하며, 가수를 꿈꾸는 평범한 학생이었죠. 그런 그녀가 한국으로 오고자 결심하게 된 계기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 때문이었는데요. 드라마 속에 등장한 화려한 자택과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한국에 가면 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대해 좋게 생각하게 되었을 때쯤, 새어머니와의 불화도 불거졌는데요. 결국 홧김에 집을 나온 강나라 씨는 한국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11살 때 중국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중국에서 생활하시다 여권 기간이 만료되어 한국행을 결정하셨죠. 엄마에게 울면서 한국에 가고 싶다 전화를 하니 브로커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무려 1,00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습니다.”

매콩강에 떠있는 나룻배와 압록강을 건너는 북한 주민 (참고 사진) / RFA, chosun

그렇게 강나라 씨는 단 며칠 만에 북한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압록강과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올 수 있었죠. 중간에 강을 건널 때는 북한군에 걸려 죽을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돌고 돌아 도착해, 한국이 이렇게 먼 곳인 줄 몰랐습니다.”

힘겹게 어머니와 만났지만, 재회 과정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겼는데요. 강나라 씨가 탈북할 때의 나이는 19세였습니다.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보다 무려 9년의 세월이 지나있었죠. 너무도 커버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중간에 아이가 바뀐 것이 아니냐”며 브로커에게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강나라 씨의 이마에 있는 점을 보고 오해를 풀 수 있었다고 합니다.

◎ 용돈벌이를 위해 시작했던 방송이 또 다른 꿈으로

국정원과 하나원에서의 생활을 마친 뒤, 비로소 강나라 씨는 진짜 한국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요. 아무래도 환경이 너무 다르다 보니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특히 ‘언어’의 차이를 극복하기 힘들었죠. 북한 말을 쓰는 자신을 이상하게 여길까 말을 하지 못하는 흉내를 낼 때도 있었습니다.

눈앞에 닥친 현실을 마주하는 것도 그녀가 극복해야 할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그때 그녀에게 방송 출연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당시 한 달 용돈이 10만 원이었던 그녀는 출연료가 50만 원이라는 말에,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죠. 일종의 용돈벌이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곧 더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방송 관련 직업에 자연스레 흥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성악을 전공했던 경험을 살려 뮤지컬 학과에 진학을 했습니다. 그러나 타고난 몸치였던 탓에 노래와 안무, 연기를 병행하는 게 어려웠죠. 그래서 연기 쪽으로 전향하게 되었습니다.” 강나라 씨의 적성과 딱 들어맞는 직업이었지만, 아쉽게도 언어적인 문제로 오디션에서 매번 탈락하고 마는데요. 그녀는 탈락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사람과 관련된 역할들을 찾아다니며 경력을 쌓아갔죠.

영화 <스윙키즈>부터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그리고 <코리안 드림>까지. 그녀는 여러 영화에서 북한 사람 역할을 소화해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오디션을 봐도 최종 캐스팅은 한국인 역할이 되는 경우가 더 많은데요. 실제로 현재 제작 중인 영화 <숙제>에서는 아나운서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고 합니다. 강나라 씨가 배우로서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였죠.

(좌) 샐러드볼과 함께 제작한 스늘티, (우) 강나라 씨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 / saladball

◎ 의류 제작부터 유튜브까지, 다재다능한 그녀

평소 강나라 씨는 패션에도 관심이 매우 많은 편인데요. 한국은 북한과 달리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다 보니, 원하는 옷을 입기도 한결 수월했다고 합니다. 방송 출연으로 용돈을 받으면 매번 지하철 상가를 찾을 정도로 그녀는 자신을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있죠. 훗날 쇼핑몰 CEO가 되는 것도 그녀가 바라는 일 중 하나 입니다.

이러한 취미 생활을 살려 직접 티셔츠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샐러드볼’이라는 브랜드 패션쇼에 초대된 적이 있습니다. 이때 만나 친해진 모델 언니와 함께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모델 상지 씨와 강나라 씨의 이름을 따 제작한 티셔츠, ‘스늘티’ 인데요. 우연하게도 각자의 이니셜 S와 N이 South와 North를 가리켜 일종의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디자인에 의미가 더해져 소비자에게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2019년부터는 유튜브 ‘놀새나라 TV’도 운영 중입니다. “SNS에서 소재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한 소재를 찾으면 북한과 연관 지어 생각하면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거죠.” 처음엔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채널이었지만, 그녀의 유튜브는 색다른 콘텐츠로 단숨에 10만 명의 구독자를 사로잡았습니다.

처음엔 악플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도 많았는데요. 북한 사람들을 낮잡아 부르는 ‘빨갱이’라는 속어부터, ‘왜 대한민국에 와서 우리 세금으로 살아가냐’ 등 부정적인 댓글이 달릴 때가 있습니다. 그녀의 영상이 캡처 되어 다른 플랫폼에 게재되면 더 심한 반응을 듣기도 하죠. “악플을 보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당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두 번 들으니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배우이자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강나라 씨. 마지막으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는데요. 그녀는 북한과 다른 한국의 환경에 놀라기도 했지만, 곧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북한이탈주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다른 곳에서 이사 온 사람’이라고 여겨주었으면 좋겠다고 전했죠. 그녀의 말처럼 북한이탈주민과 한국인들의 간극도 조금은 좁혀지기를 바랍니다.